2001년은 제조업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진 한해였다. 본격적으로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몇년새 벤처 그림자에 가려 '사양산업'이라는 수식을 달아야만 했던 전통산업이 상대적으로 다시 부각됐다. 이 때문에 '그래도 전통제조업이 최고'라는 말이 중소기업인들과 투자자들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그러나 전반적인 전통산업의 재평가와는 별도로 업체들의 명암은 부문별로 엇갈렸다. 건설자재 조선 자동차 화학 기계 제지 출판 관련 분야는 활력을 되찾았지만 가구 의류 신발 부문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디지털화 가속=지난 한해 중소제조업체에도 '디지털 바람'이 불었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제조업도 정보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그램을 깔고 전자결제 및 전자문서 관리시스템(EDMS) 등을 구축하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무엇보다 제조산업의 상징인 구로공단을 강타한 정보화 열기는 이들 업체의 쇄신 노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름부터 기름때가 연상되는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 산업단지'로 바꿔 달고 새롭게 태어났다. 요즘 이 곳에는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효진 이사장은 "전통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굴뚝산업의 이미지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며 "옛 구로공단은 전통제조업과 첨단 신산업이 조화를 이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쇼크'=중국의 WTO 가입으로 한해 4백억달러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세계 최대의 '공장'이 활짝 열렸다. 중소제조업체들에도 단연 '중국'은 올해 최고의 화두였다. 과거 대중국 투자는 원단 원자재 가공 등 단순한 노동집약적 수출업종이 주를 이뤘지만 중국 시장 자체의 구매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중국 시장을 직접 겨냥한 대기업들의 투자가 봇물을 이뤘다. 대기업들이 중국에 대규모로 생산 투자를 함에 따라 자연스레 관련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도 그만큼 늘어났다. 직접 진출뿐 아니라 대중국 수출도 늘어나 중소업체들의 주요 수출 지역이 미국 일본에서 중국으로 서서히 중심축이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경기 낙관론 속 엔저 우려=하반기 들어 '9·11 미국 테러사건' 이후 얼어붙었던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증시가 회복되는 등 경기 낙관론이 고개를 들면서 제조업체들에도 훈풍이 불었다. 그러나 최근 엔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모처럼만에 풀릴 기미를 보인 국내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전자 조선부문 등 일본 상품과 치열히 경쟁해야 하는 부문에선 타격이 크다. 게다가 엔화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원화 가치는 국가신용등급의 잇단 상승과 경기회복 기대감이 맞물려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업계엔 더욱 비상이 걸렸다. 미국에 전자 부품을 수출하고 있는 한 업체의 사장은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일본 제품에 밀려 손해를 보고도 수출해야 된다"며 "엔화 약세,원화 강세의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가 내년 매출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