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의 '합병론'이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채권단이 우여곡절끝에 신규지원과 출자전환을 골자로 한 포괄적인 지원안을 확정해 급한 불은 끈 상태지만 냉혹한 반도체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시 합병밖에 방법이 없다는 당위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이닉스 구조조정특별위원회(위원장 신국환 전 산자부 장관)가 최근 '해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언급했고,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스티브 애플턴 사장이 최근 극비리에 방한해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과 일부 채권단 관계자들을 접촉했다는 설이 흘러나오면서 하이닉스의 합병논의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 합병론 왜 나오나 일부 채권단 고위관계자들은 합병을 당연히 `가야할 길'로 제시하고 있다. 일단 유동성 위기를 넘긴 상황이지만 여전히 현 체제로는 치열한 반도체업계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신규지원이나 출자전환, 부채탕감을 통해 유동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간의 처방"이라면서 "반도체 경기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근본적인 처방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일단 신규지원 6천500억원과 부채탕감에 따른 이자감면효과 등을 감안하면 내년도까지의 시설투자와 운전자금은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가 그동안 어려움을 겪는 사이 투자를 거의 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위기국면은 이제부터 닥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도체업계 선두주자인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분야 투자를 세차례나 줄이고도총 4조4천억원을 설비확장에 쏟아부었고, 또 300㎜ 웨이퍼를 양산하는 등 경쟁업체 따돌리기 전략을 구사하면서 세계 반도체시장점유율을 30% 가까이로 끌어올렸다.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마이크론도 올해 투자규모가 2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올들어 현재까지 고작 2천억원 가량밖에 투자하지 못했다. 그동안 부실업체로 낙인찍히면서 시장의 이미지가 손상당한 것까지 생각하면 하이닉스가 언제 선두대열에서 밀릴 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려운 난국을 단번에 돌파할 카드는 역시 합병밖에 없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합병을 하게 되면 일단 시장지배력을 곧바로 올릴수 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연구개발비용도 줄일 수 있는 시너지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합병론의 내용은 현재 거론되는 합병론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의미의 합병과 함께 전략적 제휴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는 물론 합병 상대와의 협상에 따라 합병의 강도와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 마이크론의 애플턴 사장이 하이닉스측과의 비밀협상에서 합병을 논의했다는 설을 얘기할 때는 인수의 의미가 강한 합병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세계반도체업계 2위인 마이크론(시장점유율 18.7%)이 하이닉스(17%)를 인수하면 삼성전자(30%)를 물리치고 세계1위로 올라설 수 있다. 또 전략적 제휴을 골자로 할 경우에는 양사의 주식을 맞교환하는 방안이 주로 거론된다. 이 경우 하이닉스 주식의 감자가 전제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출자전환 이후 채권단의 지분이 70%로 높아졌기 때문에 보유지분 매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채권단의 하이닉스 지분을 마이크론 지분과 맞바꾸는 전략적 제휴를 맺은뒤 공동 기술개발과 마케팅 전략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마이크론 등 합병상대업체가 완전감자 뒤 자산-부채를 인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는 채권단이 주식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실현 가능성이 낮으며, 감자에 따른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변수가 된다. 한편에서는 중국업체들이 하이닉스 일부 생산라인을 매입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이닉스 구조조정특위가 분할 매각을 가급적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밖에 주로 하이닉스 내부를 중심으로 하이닉스 독자생존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구노력의 순조로운 이행과 반도체 경기의 회복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