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종로 등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공장밀집지대인 성동구 성수동 일대. 3공화국 정부가 "공업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기 이전부터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이곳은 "민자(民資)1호 산업단지"이다. 한낱 서울 외곽 채소밭에 불과했던 이곳을 "1960년대 벤처기업인"들이 개간,2천여 중소공장이 밤낮없이 돌아가는 오늘날의 "성수공단"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생 공업단지인 성수공단은 "삼바축구"와 같은 유연함을 생명으로 삼고 있다. 구로공단 반월공단이 생겨 70년대말부터 기계공장 철공소 등이 짐을 쌀때 을지로에서 인쇄업체들을 영입,오뚜기처럼 일어섰다. 치솟는 인건비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외국 노동자들을 받아들여 생산원가를 낮췄다. 물류문제는 지하철2호선과 구리-판교 고속도로,강북강변도로 해결했다. IMF 사태 이후로 성수공단은 또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변화의 주체세력은 40여년동안 성수동을 지켜온 중소기업인들. 이들의 목표는 '굴뚝 원조'인 성수공단을 첨단 산업단지로 바꾸는 것이다. 뚝섬역 5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첫번째 골목길이 성수공단의 오늘을 대변한다. 골목길 오른쪽엔 철공소 인쇄업체 정비업체 등 이른바 '하꼬방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나 골목길 왼쪽에는 첨단 설비를 갖춘 SK아파트형공장이 자태를 뽐낸다. 중소기업 유진흥산이 사업 주체가 돼 설립한 SK아파트형공장엔 전자조립공장 기계제작업체 벤처기업 등 8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성수공단엔 이같은 아파트형 공장이 7개나 들어서 있다. 성수공단의 이같은 변화가 1백% 자의인 것만은 아니다. 성수동에서 22년동안 액세서리 공장을 경영해온 유미무역의 이태녕 사장은 "제약공장 전자제품공장 등 대규모 공장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공동화(空洞化)를 막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약품 건풍제약 영진약품 모나미 대웅전기 등이 공장을 성수공단에서 지방으로 옮겼다. 이제 남은 대규모 공장은 아남산업 신도리코 정도다. 대규모 공장의 이탈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수요는 늘어나는 데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땅값 때문에 공장을 확대할 수가 없어서다. 성수공단의 변신은 혼자만의 힘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성동구청과 한양대가 이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고재득 성동구청장은 "대규모 공장의 이전으로 공터가 된 땅에 아파트 등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가급적 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어 아파트형공장 설립을 유도하고 있다. 한양대는 성동구청과 함께 재단법인 성동벤처밸리를 만들어 첨단산업 기반 조성을 돕고 있다. 중소기업인 성동구청 한양대의 이같은 노력으로 성수공단은 지난 3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육성 촉진지구로 지정받았다. 그렇지만 성수공단의 앞날이 험난할 것이라고 보는 중소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박정웅 제일문화인쇄 대표는 "20대 젊은이들을 성수공단에서 찾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선 단순직 근로자를 채용하기가 힘들다. 젊은 숙련 엔지니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성수공단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직원 30명,매출액 50억원 수준의 기업이 성수공단에선 '큰 기업'으로 대접받는다. 직원 10명 이내,매출액 20억원 미만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 작은 기업들이 같은 지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수익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성수공단이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제대로 가닥을 잡아나갈지 주목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