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 사이 불어닥친 코스닥.벤처 붐은 한국의 '조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자양분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대검찰청 강력부의 한 검사는 "우리나라의 지하경제는 지난해 기준 59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11%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하경제 규모가 이처럼 방대한데다 조폭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세탁'한 돈으로 벤처 투자에 나서거나 주가 조작에 개입하는 것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해서 급격하게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는 '조폭 경제'를 마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데 사직당국의 고민이 있다. 지난 4월 대검찰청 강력부가 전국 지검과 지청의 강력부장검사 2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강력부장검사회의'를 개최,긴급 대책을 논의한 것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이 회의에서 검찰은 △벤처회사 지분 강제 매입 △주가조작 개입 △상가관리 비리 등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는 조폭들의 신종 비리를 집중 단속키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검찰은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폭력계 임옥성 주임은 "조폭들은 친척이나 제3자의 이름을 빌려 사업에 진출하기 때문에 이들이 운영하는 기업체를 파악해서 일일이 관리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조폭들의 활동이 활발한 건설업계에 대해서조차 뚜렷한 수사 성과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 대검 강력부 이재원 과장은 "현행법상 5천만원만 있으면 누구든 건설업 면허를 받을 수 있다"며 "조폭 출신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수천∼수만개에 이르는 지방 중소형 건설회사의 임직원 변동 사항을 파악하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력수사 분야에서만 25년 이상을 근무하며 '한국 조직폭력의 실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한 송파경찰서 안흥진 기획수사반장은 "이따금 기업화된 조폭들의 비리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몇차례 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배달사고' 같은 분쟁이 발생해 조직간 싸움으로 번지거나 손해를 본 한쪽이 검찰에 진정·고소하는 요행이 따라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수사상 한계에도 불구하고 검·경의 보다 강력한 수사의지만 있다면 조폭의 기업화는 상당 부분 근절될 수 있을 것이란 지적도 많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만 해도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이나 이용호게이트처럼 조폭이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았던 대형 스캔들에서 검찰의 수사의지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파트분양대행사인 M사를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분양이 잘 될 때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자고 떼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검.경이 수시로 분양 현장을 덮쳤다면 상당수의 현장범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 =이학영 경제부 차장(팀장).김태철.김동민.조성근.최철규.송종현.이상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