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의 외자충격관리 (하) ] 지난 1990년대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산업을 송두리째 외자계에 내주었던 뉴질랜드가 최근 국적은행 설립을 추진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내년 2월 출범 예정인 국적은행이 은행산업을 장악한 외자계에 대항마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내부에서도 찬성론과 반대론이 극명하게 엇갈릴 정도로 이 문제는 뜨거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개방화 자유화의 대표적인 주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뉴질랜드가 국적은행을 설립키로 한 것은 이미 상당수 은행이 외자계로 넘어간 국내 금융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질랜드 은행산업 현황=작년말 현재 뉴질랜드에서 영업중인 은행은 17개이나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대형은행은 모두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내국인 소유은행은 소규모 지방은행인 TSB(Taranaki Savings Bank)에 불과하다. 자산기준 5대은행중 웨스트팩 트러스트 뱅크(Westpac Trust Bank),뱅크 오브 뉴질랜드(Bank of New Zealand),ANZ 은행,ASB 은행 등 4개는 호주계가 소유하고 있고,3위인 내셔널 뱅크(The National Bank)는 영국계가 소유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경제위기가 닥친 1990년을 전후로 잇따라 팔려나갔으며 1996년 5월에 내국인 소유의 유일한 전국은행이었던 트러스트 뱅크까지 호주의 웨스트팩 뱅킹 코퍼레이션(Westpac Banking Corporation)에 합병됨으로써 대형 은행들이 모두 외국계에 넘어가게 됐다. 국적은행 설립추진 배경=은행산업이 외자계에 완전히 넘어 가면서 은행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팽배한 것이 국적은행 설립추진의 주된 이유다. 수익성만을 따지는 외자계 은행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대대적인 지점폐쇄,인원감축에 나서는 한편 수수료를 대폭인상 했다. 1993년 이후 은행 총 지점의 3분의 1이 폐쇄되면서 많은 인력들이 은행을 떠났다. 외자계로 탈바꿈한 은행들은 계좌유지 비용으로 매달 3달러를 부과하고 ATM 이용시 50센트~1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높은 수수료를 매겼다. 이렇게 되자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비스도 나빠져 소비자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특히 중소도시 또는 농촌지역에 집중된 지점폐쇄로 이들 주민들은 은행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가야하는 큰 불편을 겪게 됐다. 아울러 외자계 은행들의 기업 대출기피로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기도 했다. 은행산업의 높은 수익성도 국적은행을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조성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뉴질랜드의 은행산업은 규제의 완전철폐에 따라 높은 수익성을 구가하고 있다. 1997년 이후 4년 연속 순자산 수익률이 20%를 웃도는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러나 총지분의 90% 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하다 보니 "외국인들만 좋은 일 시키느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비등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 연합당(Alliance Party) 총재인 짐 앤더튼(Jim Anderton)은 1999년 11월에 치르진 총선에서 국적은행 설립을 공약하기 이르렀다. 연합당은 총선 결과 노동당의 연정 파트너로 집권에 성공하자 금년 2월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적은행 설립을 확정했다. 가열되는 논란=논란의 핵심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뉴질랜드에서 은행의 국적성을 따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것과 왜 하필이면 국가소유 은행이냐는 데 모아지고 있다. 먼저 국적은행 설립에 반대하고 있는 측에서는 뉴질랜드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외국의 거대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기대될 뿐아니라 충격에 대한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반대론자인 스테판 브루넬(Stephen Brunell) 빅토리아대 경제금융대학장은 "국적은행 설립은 집권 노동당과 연합당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서 뉴질랜드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국가소유 은행은 정치적인 이유로 신용위험이 높은 계층에 대한 대출을 마다할 수 없게돼 결국 부실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연합당의 존 리퍼(John Lepper) 경제자문관은 "외자계 은행들의 횡포는 이미 국민의 54%가 국적은행 설립을 지지하고 있는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는 뉴질랜드의 국가 정체성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외자계에 의한 은행지배로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을 뿐아니라 수익성이 높기로 유명한 은행산업 이익의 90% 이상이 외자계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 더이상 방치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가 소유은행의 부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은행산업의 수익성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면서 "국가 소유은행의 주고객층인 중소기업.서민들에 대한 대출위험은 오히려 타계층에 비해 낮다"며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경환 한경종합연구소장 khg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