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및 상계관세위원회 정례회의에서 한국은 하이닉스 지원방안을 놓고 미국 및 유럽연합(EU) 등과 공방을 벌였다. 하이닉스 지원방안이 WTO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미국과 EU의 주장 때문인데 과연 그러한 주장이 사리에 맞는 것일까. 처음에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특정성'과 관련된 시빗거리였다. 상계조치의 전제조건이기도 한 특정성은 객관적 중립적 기준이 아닌 정부의 자의성에 기초한 특정기업이나 산업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회사채 인수제도는 자의성과는 거리가 먼 데다 하이닉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보면 이는 무리한 주장이다. 물론 WTO협정에서는 사후적 의미의 특정성 조항도 있다. 객관적 중립적 기준을 갖췄지만 결과가 특정 기업 내지 산업에 치우친 경우다. 그러나 이런 식의 특정성 판단은 보수적이어야 옳다. 결과의 균등은 처음부터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EU가 이를 악용하려 든다면 사실 그들도 특정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나아가 며칠전 확정된 하이닉스 추가지원 방안은 사전적이건,사후적이건 어떤 의미에서도 특정성에 해당되지 않는다. 어찌됐건 시장에서 일어난 채권단의 결정이고 보면 애초부터 특정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조금 주장은 어떤가. 보조금이 성립되려면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뒀을 경우와 다른 무슨 혜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일부 채권단에 정부지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하이닉스에 혜택을 줬다고 유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만약 어떤 국가가 미국과 EU에 대해 정부지분을 근거로 보조금 혐의를 거론한다면 바로 그들이 누구보다 펄쩍 뛰고 나설 게 틀림없다. 한국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합리적 근거를 대야 한다. 수출보조금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하이닉스가 수출기업이라는 데 착안,아예 특정성과 상관없이 금지대상인 수출보조금으로 우기는 모양이다. 백번 양보해서 설사 보조금이라고 해도 수출 촉진이 주목적인 수출보조금은 결코 아니다. 수출기업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보조금이 단지 수출기업에 제공됐다고 그렇게 주장한다면,미국이나 EU는 조금이라도 수출하는 그들의 기업이 받는 어떤 종류의 보조금도 금지해야 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미국과 EU가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오죽이나 시달렸으면 그런 억지를 부리나 싶다.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황당한 논리임에 틀림없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