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한국정부로선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했다.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FTA는 관세및 비관세 장벽을 제거해 자유로운 상품과 서비스 교역을 목표로 하는 개별국가간 일종의 지역협정이다. 일본과 싱가포르가 교역에 관한한 같은 국경을 없애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처럼 특정국가와의 교역장벽제거보다는 우루과이라운드같은 다자간 통상협력체제에 안주하면서 수출경쟁력 강화에 열중해 왔다. 그런 일본도 이제 방향을 과감하게 틀기 시작했으니 일본과의 동류의식 속에 안주해왔던 한국으로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DJ 정부는 출범 이후 정상회담때마다 미국과의 투자협정 추진, 칠레와의 FTA 추진 등 여기저기서 공약은 많이 발표했지만 국내 이해상충을 돌파할 리더십 부족으로 인해 여태껏 성과가 전혀 없다. 이미 동남아 기반을 굳힐대로 굳혀놓은 일본이 싱가포르와 FTA를 추진한다고 총리가 외교무대에서 공식발표한 이상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 틀림없다. 통상전략뿐만아니라 외교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일본과 싱가포르의 FTA는 한국에는 충격적이고 교훈적이다. ◇ 거세지는 지역블록화 추세 =세계 각국은 생존을 위해 우루과이 라운드나 뉴라운드로 대표되는 다자간 협상에 참여하는 동시에 지역경제통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맞는 몇몇 국가끼리 모여 공동시장을 만든다든지 FTA를 맺는다든지 하는게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지역주의 경향은 미국의 테러전쟁 이후 더욱 가속화되는 추세다. 지역경제통합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EU(유럽연합)다. 유럽은 개별국가로선 초강대국인 미국에 맞서기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하나의 국가'라는 기치 아래 모였다. 지난 1958년 EEC(유럽경제공동체)를 출범시킨 이래 40여년에 걸쳐 통합작업을 추진,단일통화(유로화) 사용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80년대말 캐나다와 FTA를 맺은데 이어 94년 멕시코를 끌어들여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 북미와 중미를 아우르는 거대한 시장통합을 추진중이다. 미국은 남미의 칠레및 싱가포르와도 FTA 체결을 추진중이며 북미와 중남미 34개국을 포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출범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남미쪽에선 지난 95년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이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을 출범시켰다. 회원국간 교역상품에 대해선 관세를 물리지 않거나 저율특혜관세를 적용함으로써 단일시장을 창설한다는게 목표다. 아시아에선 태국 베트남 미얀마등 동남아국가를 중심으로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가 93년 출범했다. 6개국에서 출발해 지금은 10개국으로 회원국이 늘어난 상태다. ◇ 외톨이 한국 =이처럼 활발한 지역화에 한국은 '외톨이' 신세다. 정부가 다자간 협상에만 주력했지 상대적으로 지역협력을 등한시해온 까닭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칠레와 FTA를 추진했으나 칠레산 농산물 수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반발하는 농민의 입김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본과의 FTA 체결도 답보 상태며 한.중.일 3국간 지역협력도 각국의 사정이 다르고 과거사에 얽매여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WTO 1백42개 회원국 가운데 FTA를 체결하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역협력은 다자간 무역체제가 잘 안되거나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질 때 그 영향을 줄일수 있는 한 돌파구다. 따라서 지역협력에서의 '왕따'는 그만큼 한국경제엔 위험요소가 된다. ◇ 다자협상에서도 협상력 모자라 =그렇다고 다자간협상에서 우리 입김이 센 것도 아니다.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라곤 하지만 협상력은 이에 못미친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리는 "미국과 EU 등이 협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최근 진행되고 있는 뉴라운드 협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