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 영향받지 않고 각종 투기적 공격에도 안전한 세계 단일통화인 '테라(Terra.6면 경제신어 참조)'를 창설하자" 미국 테러 사태 이후 새로운 국제기구와 세계 단일통화 창설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유로화 탄생의 산파역이자 '미래화폐'의 저자인 버나드 리태어 벨기에 전 루벵대 교수의 테라 창설 주장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리태어 교수의 주장대로 테라가 만들어질 경우 현재 세계 단일통화 부재에 따른 거래비용 부담과 투기 문제를 해결하고 통화정책의 유용성까지 높아져 세계경제 성장과 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화폐가 탄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테라 창설은 가능한가. 이 우문(愚問)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테라를 어느 기관에서 발행하고 화폐가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를 '테라 구상'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리태어 교수의 주장에서 중요한 테라의 발권 기능은 원자재 생산업자들이 참여하는 '테라연합(Terra Alliance)'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테라연합이 국제상품의 수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테라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테라의 화폐단위는 주로 원유 밀 구리 주석 등 국제상품을 표준화한 바스켓에 의해 매겨진다. 이에 따라 바스켓에 포함된 상품시세가 변할 경우 테라의 실질가치도 변하게 되므로 각국의 물가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견해다. 또 테라의 사용을 보통 화폐의 기능인 거래.투기.예비적 수요중에서 거래 기능에만 한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테라의 성격을 가치저장 수단보다는 유통 수단으로서 국제무역 결제에 사용되는 무역용 화폐로 못박고 있다. 문제는 이런 테라의 출현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테라를 창설할 경우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게 될 테라연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크게 두가지 점에서 의문시된다. 우선 테라 바스켓을 구성하는 현물교역이 세계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에 그쳐 테라연합의 대표성과 신뢰성에서 한계가 보인다. 다른 하나는 국제 상품시세가 그 어느 가격변수보다 변동이 심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테라의 가치 유지가 매우 어렵게 된다. 오히려 테라연합국들이 담합해서 테라 바스켓을 구성하는 상품을 무기화할 경우 세계경제에 또다른 화(禍)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테라의 사용을 국제무역거래에 한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화폐의 세가지 기능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거래 기능보다는 갈수록 화폐의 가치저장과 투기 기능이 중시되는 추세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테라와 다른 화폐가 병행해 사용될 경우 테라는 퇴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테라와 같은 새로운 화폐 발행을 통한 글로벌 통화구상은 그야말로 논의 차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거래에서 절대적인 결제 비중을 갖고 있는 미 달러화나 지역블로별로 공동통활ㄹ 도입한 이후 이들 통화간의 가치수렴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글로벌 통화로 가능 수순이 더 빠른 방안이다. 미 테러 사태 이후 국제 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 미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채택해야 한다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과 새로운 국제 통화제도로 환율 움직임에 상하 제한폭을 설정하는 '목표환율대(Target Zone)'가 테러 논의보다 더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