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J 라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57)가 25일과 26일 이틀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되는 '제2차 아시아 경제패널(AEP)'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라우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뒤 미국 UC버클리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분야는 경제개발.성장론.동아시아 지역과 중국 경제에 조예가 깊다. 특히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1년에 수차례씩 만남을 갖고 중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95년엔 '제2의 멕시코 위기 오나(Another Mexico?)'라는 논문을 발표, 한국을 비롯한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아시아 지역에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신문 최경환 전문위원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해 그와 대담을 가졌다. [ 대담=최경환 전문위원 ] ------------------------------------------------------------------ ◇ 최 위원 =최근 중국을 제외한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이 경기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 라우 교수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경기침체는 물론 정치적 리더십도 약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대만이나 홍콩은 저임금 산업을 중국에 빼앗겨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주변국에 대한 금융·무역 서비스 등으로 먹고 사는 싱가포르의 경기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한국도 경기가 둔화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보다는 훨씬 빨리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내 교역 규모가 전체 교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각 국가간 협력체제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는 90년대말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도 실증적으로 증명됐다. 동아시아 지역 경제는 갑자기, 그것도 한꺼번에 쇠퇴했다. 그리고는 전체 동아시아 국가가 갑자기, 한꺼번에 회복했다. 이제 아시아는 미국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마냥 바랄 수는 없는 상태다. 스스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 모두 정부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늘려 침체 국면을 탈피해야 한다. 공공지출로 각국의 내수를 진작시키면서 동시에 역내 교역을 늘려야 한다. 물론 각 나라가 보호무역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 최 =각국간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 라우 =FTA 자체는 경제적 효과가 별로 없다.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도 어렵다. FTA 체결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체결국간 중복되는 생산품목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자국의 생산품이 다른 나라의 생산품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면 FTA 추진이 어렵게 된다. 일본과 싱가포르가 FTA를 체결한다고 하지만 두 나라는 원래 교역하는게 거의 없다. 아세안(ASEAN) 국가끼리는 FTA 체결로 시장을 크게 만들어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인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최 =최근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조만간 한국 경제를 능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라우 =한국이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선 중국은 기본적으로 수출주도형 경제가 될 수 없다. 시장을 완전 개방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 수출은 GDP대비 약 20%지만 부가가치면에서 보면 GDP대비 고작 6∼7% 수준에 불과하다. 수출 품목을 보더라도 한국과 겹치는게 별로 없다. 얼핏 보면 두 나라간 수출품목이 거의 같아 보이지만 세부 품목으로 들어가면 큰 차이가 있다. 간단한 예로 TV를 들어보자. 중국은 일반 컬러TV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지만 한국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평면(컬러)TV를 만들고 있다. ◇ 최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이 중국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 라우 =단기적인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다고 해서 비관세장벽 등 행정적 규제가 일거에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경제시스템 자체에 다각도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국 제품이 계속 들어오면서 경쟁이 심화돼 결국 비효율적 독점이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WTO 가입은 한국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높은 관세때문에 부진했던 중국의 한국산 자동차 수입도 늘어날테고 D램 등 반도체나 섬유 등의 업종도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 무역관계는 더욱 심화·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 최 =이번 AEP 세미나에서 외환보유액의 적정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최근 1천억달러를 돌파했는데 충분한 수준이라고 보나. ◇ 라우 =한국의 외환보유액 사정이 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 보유액이 충분한지 적정한지는 한국 사정을 잘 몰라 답하기 힘들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기준에 따르면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은 5∼6개월동안 수입대금을 지급할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유동화될 수 있는 단기부채(liquidifiable short-term liabilities)' 기준에서 따지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기에는 외국인의 주식투자 비중, 은행의 단기 부채, 경상수지 적자 등 세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 최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 라우 =한국과 일본 모두 비슷한데 창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 큰 문제다. 어떤 회사도,어떤 산업도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경제가 강한 이유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이 망하고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노동자 해고와 신규 고용 창출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창업정신을 불어넣기가 매우 힘들다. 열악한 사업여건은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로 이어진다. 해고하기 어려우면 고용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도 문제다. 대기업에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리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 ------------------------------------------------------------------ [ 약력 ] 1944년 12월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출생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경제학 학사 (64년) 미국 UC버클리 경제학 석사 (66년).박사 (69년)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76년~현재) 저서 : '개발모델-남한과 대만의 경제성장 비교연구(1986)' '21세기 중국 경제-계량경제학적 접근(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