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전자업체인 A사는 지난 6월 관할 지방국세청으로부터 느닷없는 세무조사 통보를 받았다. 회계장부를 옳게 기록하고 세금을 제대로 납부해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지만 "세무조사"라는 그 말 한마디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A사의 K사장은 이리저리 세무조사를 통보받게 된 연유를 캐보았다. 엉뚱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원인 아닌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프리랜서인 그의 아버지는 주요 일간지에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김 사장은 즉각 SOS를 치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요청에 따라 어쩔수 없이 기고를 중단했습니다. 당연히 세무조사도 나오지 않았지요" K사장은 인터뷰를 사양했지만 그를 잘 아는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세무조사가 이런데까지 동원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세금탈루나 불공정 거래 등과 같이 기업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면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조사하고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질서 확립은 정부에 주어진 의무이기도 하다. 기업들도 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문제는 공권력이 다른 목적으로 동원되거나 과도하게 행사돼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정부 조사의 정당성마저 실추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데 있다. 신종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조사본부장은 "조사가 너무 잦은데다 여러 감독기관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경쟁적으로 조사를 벌이는 바람에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에 장애가 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4대 그룹은 지난 98년부터 지금까지 4차례의 공정위의 내부거래 조사와 국세청 세무조사,금융감독원의 금융기관연계 검사 등을 받았다"고 그는 소개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부처는 서로 다르지만 정부기관의 조사요원 누군가가 늘 회사에 상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대기업그룹 계열인 B사의 세무팀장은 "공정위 조사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기업에 대한 정부기관의 조사방식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조사요원들이 직원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하고 현장조사권을 앞세워 회사 캐비넷은 물론 개인 사물함까지 마구 뒤지는데는 정말이지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는 것."공정위 조사는 통상 30일간 진행되는데 그런 조사를 현정부 들어서만 네차례 받았으니 오죽 했겠느냐"고 그는 덧붙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B사는 현 정부들어 정기 세무조사도 받았다. 기업들이 각종 정부 조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업이미지의 실추.국세청은 웬만해선 세무조사 사실이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덜하나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사실을 즉각즉각 발표한다. 기업의 이의제기 및 행정소송으로 과징금부과가 취소되거나 규모가 줄어들어도 해당회사로서는 이미지 실추를 만회할 길이 없다. 공정위가 국정감사 때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과징금 부과 등과 관련 현 정부들어 기업들이 공정위는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은 무려 1백70건에 달한다. 문민정부 시절(49건)의 거의 4배에 육박한다. 현 정부가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애쓰다 보니 당연히 이의제기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의 공정위 승소율이 56.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들이 대부분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승소율이 절반을 약간 웃돈다는 것은 "무리한 조사가 많다"는 재계의 주장이 결코 엄살만은 아니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금.회계 담당자들은 정부조사에 대해선 웬만하면 입을 다문다. 자칫 불만을 토로했다는 사실이 감독기관의 귀에 들어갔다간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전경련에서 최근 규제완화 건의를 위해 실태조사에 나섰을 적에도 기업들이 출자규제 등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했지만 내부거래 조사와 관련해선 2~3곳을 빼고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전경련 신종익 본부장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기업과 기업인을 예비 범법자로 간주하는 경찰국가식의 조사관행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