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후 미국 기업들의 경영진 내부에 권력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테러 대참사 이후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경영인과 스스로 일을 처리해내는 중간관리자 층으로 회사권력이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메릴린치증권의 스탠리 오닐 사장(49)은 위기관리 리더로 급부상한 대표적 사례. 테러 이후 오닐 사장이 매일 책임져야 할 업무가 크게 늘어났다. 그가 지난 7월 사장에 선임됐을 때만 해도 향후 수년간은 데이비드 코만스키 최고경영자(CEO.62)의 역할을 전혀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테러 이후 그는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을 보임으로써 사내 경쟁자를 제치고 1인자로 올라설 수 있는 입지를 굳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임원들의 근무지를 분산시키고 9천명에 이르는 중개인 등 직원들을 재배치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테러 이후 생긴 경영진의 공백을 채우며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실세로 부상한 경영인들도 있다. 투자은행인 키프 브루에트 우드의 토머스 미쇼드 부사장과 앤디 센샤크 부회장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이 회사가 입주한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붕괴되면서 조셉 베터 공동CEO와 다른 공동CEO인 존 더피의 아들이 사망했다. 더피가 슬픔에 젖어있을 때 미쇼드 부사장과 센샤크 부회장은 살아남은 종업원들을 임시사무소에 배치하고 전산시스템을 재가동하는 등 위기에 강한 경영자의 자질을 보여줬다. 권력이동의 또 다른 형태는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던 엠파이어 블루크로스 앤드 블루실드라는 기업에서 나타났다. 이 회사의 마이클 스타커 CEO는 중간관리자들이 위기에서 회사를 살린 '스타'라고 치켜세웠다. 이들은 비공식팀을 자발적으로 조직해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했던 것. 스타커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스스로 일할 수 있을 때 꼭 상부에 건의할 필요가 없다는 기업문화를 만든 게 도움이 됐다"고 자평했다. 권력을 이양한 셈이다. 이 회사는 중간관리자들에 대한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간관리자들에게 시상하는 제도를 운영중이다. 전문가들은 테러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져들고 있는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서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경영인이나 중간관리 층으로 권력이동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