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지난 80년대 추진했던 공기업 민영화 과정은 이후 전세계 각국이 참고할 정도로 민영화의 교과서로 통한다. 영국의 공기업 개혁은 공기업 비효율의 원인이 경영방식이나 근로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있다는 점을 인식한데서 출발했다. 지난 79년 당시 영국 공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거대 공룡'과 같은 조직이었다.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 수는 1천5백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들은 여러차례에 걸친 경영혁신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았다. 공기업의 경영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부분은 계속 늘어만 갔고, 이와는 반대로 소비자들의 만족은 작아지기만 했다. 해답은 '민영화'로 귀결됐다. 공기업은 정치권으로부터의 영향력 뿐만 아니라 관료들의 간섭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노력이었다. 그동안 공기업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공기업들이 아무리 경제적인 목표를 세워 달성하려고 해도 정치권의 간섭으로 이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93년까지 47개 주요 공기업과 30~40여개의 소규모 공기업을 민영화시켰다. 79년 당시 공기업이 담당했던 산업의 3분의 2가 민영화를 통해 민간인 주인을 찾았다. 94만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민간부문으로 옮겨졌다. 수익성이 높은 제조업에서 공익사업과 의료.교육사업으로 민영화의 범위가 확대됐다.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는 '경쟁' 개념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공기업 특성상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배력이 큰 만큼 민영화 이후에도 적절한 규제를 가해 경쟁이 이뤄지도록 체제를 갖췄다. 자연 독점적인 산업에도 경쟁을 도입했다. 민영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경영 성과의 개선은 물론 소비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향상됐다. 공기업의 효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해당 산업의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효과도 거두게 됐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경영자와 근로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주식 매각이 이뤄졌다. 이는 영국 자본시장의 저변을 확대하고 구조조정에 따른 기업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분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79년부터 80년대 말까지 10여년에 이르는 기간에 영국 국민중 주식보유자 수가 4배나 늘어나 노조에 가입된 근로자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용감축으로 인해 사회불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민영화를 성공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