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간공격이 시작됐다. 지금으로선 전쟁의 장기화 여부와 그 파장을 속단하기 어렵다. 문제는 미국의 목표수위가 어느 정도이고, 과연 미국의 스케줄대로 진행되고 계획대로 목표달성이 이뤄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거 미국의 베트남전과 구소련의 아프간전쟁 경험에 비춰 이번 전쟁도 초기엔 미국이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빈 라덴과 탈레반 제거라는 가시적인 목표달성이 쉽게 이뤄지지 않고 전쟁이 길어질 경우 상황은 예측불허일 수 있다. 세계경제와 가뜩이나 취약한 상태인 한국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중동지역 정치와 경제 전문가인 홍순남 외국어대 교수(아랍어)와 김중관 명지대 교수(투자정보)를 만나 전쟁의 파장과 중동지역 정세 전망을 들어봤다. --------------------------------------------------------------- ― 이번 전쟁준비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중동지역 전략은 무엇인가. 미국은 최근 아랍진영과 거리를 좁히고 이스라엘을 순화시키려는 외교노력을 보이는데. ◇ 홍 교수 =미국의 전략은 중동에서 안정적인 석유자원 확보 및 보급망 유지와 함께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은 전쟁을 하더라도 장기전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과격하고 지속적인 공격은 범아랍권의 '반미·반이스라엘 동맹' 확산을 야기함으로써 이스라엘 보호와 석유수급이라는 미국의 이익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김 교수 =맞는 얘기다. 미국은 국제적인 위신추락과 함께 많은 자국민을 잃었지만 중동, 나아가 인도양 전역을 장악할 수 있는 호기를 맞게 됐다. 지금 어느 누구도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처럼 국제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전무후무하게 유리한 국면에서 미국은 무리하게 전쟁을 확대시키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 아프가니스탄의 장래는 어떻게 보나. ◇ 홍 교수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탈레반 정권은 그저 수도 카불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군벌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에 쫓겨 다른 근거지를 찾으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의 공격으로 죄없는 민간인들이 많이 죽게 됐다. 미국도 이 점을 의식해 아프간 난민을 위한 구호식량을 공수하는 작전을 동시에 펴고 있는 것이다. ◇ 김 교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불을 점령한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통치가 불가능하다. 또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고원 한복판에 있다. 험준한 지역에 거점을 확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얘기다. 미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만약 미국이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 큰 국가들과 전선을 확대하면 어떻게 되나. ◇ 홍 교수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중동 국가들은 알려진 것보다 그다지 큰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다. 미국도 구태여 '혐의가 불확실한' 나라들과 지루한 전쟁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 김 교수 =전쟁이 장기화된다는 것은 미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국제파벌이 조성된다는 얘기다. 지금 납작 엎드려 있는 아랍 정부들은 곤혹스럽겠지만 결코 민중의 정서를 무시하지 못한다. ― 사우디의 경우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있는데 반해 빈 라덴은 이 나라 엘리트 출신이다. 이집트의 경우도 이스라엘과 유화적인데 반해 정치는 대단히 독재적이다. 요컨대 아랍은 서방에 대한 자세가 대단히 복잡하고 나라 내부적으로도 집권층과 기층민의 대립이 심각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의 공세로 중동내부가 혼미해질수도 있을텐데. ◇ 홍 교수 =그렇다. 미국에 영공을 내준 파키스탄도 인도 힌두교정권과 분쟁을 겪고 있다. 회교도 국가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 인도와의 분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중동 정부들은 대개 이러 종류의 고민들을 다 안고 있다. 따라서 향후 중요한 것은 국제여론이다. 이번 전쟁으로 미국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 중동지역의 반미정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 미국의 노골적이고 편향적인 이스라엘 지원이 이번 사태를 야기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정책도 바뀔 가능성이 있나. ◇ 김 교수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유태인의 입김이 강한 미국 정치구조로 볼 때 이스라엘 보호정책을 바꾸는데는 한계가 있다. 다만 범아랍권이 반미 대열에 합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전쟁도중 이스라엘이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견제는 할 것이다. ◇ 홍 교수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를 맞아 국제사회의 고립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동?수많은 중동분쟁의 와중에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로부터 그다지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아프간전쟁에 참전하기보다 자의든 타의든 중동평화회담을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 아랍의 테러리스트 조직은 완전히 궤멸될 것으로 보나. ◇ 김 교수 =어려울 것이다. 아랍 테러리스트들은 종교지도자이자 정치 투쟁가로 민중의 존경을 받고 있다. 라덴이 '성전'을 외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테러조직은 또 단일 국가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동 22개국에 거미줄같은 비밀결사체를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친미성향의 정부일지라도 이들을 쉽게 체포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다. ◇ 홍 교수 =만약 미국이 범아랍권을 겨냥해 이번 전쟁을 일으켰다면 테러리스트 조직이 더욱 힘을 받을 공산이 크다. 음성적으로 움직여온 조직이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양성화된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과 아랍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 아랍이 그토록 미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 김 교수 =중동분쟁에서 미국이 너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것이 결정적이다. 부모 형제가 미제 무기에 의해 죽어가는데 당연한 일 아닌가. 지난달말 남아공에서 열린 유엔의 인종차별 철폐회의에서 미국이 이스라엘과 동반 퇴장해 버린 사건은 중동지역의 반미정서를 더욱 부채질했다. ◇ 홍 교수 =아랍민족은 대부분 가난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알라는 자신의 편'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고 산다. 그런 자신들을 핍박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왜 밉지 않겠는가. ― 이번 전쟁으로 오일쇼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 김 교수 =오일쇼크가 쉽게 닥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아 아랍권이 단결하면 모르겠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당장 미국의 입김을 벗어나 공급조절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다. 마침 세계적인 불경기로 최근 유가도 하향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 홍 교수 =그러나 미국이 해상작전을 수행하면서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을 지나는 선박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각국들이 석유비축량을 늘리기 위해 '사재기'에 나서면 일시적으로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 ◇ 김 교수 =물론 그렇지만 몇차례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많은 나라들은 상당히 탄탄한 에너지 수급대책을 갖고 있다. 원자력등 대체 에너지도 많이 개발돼 있고 중국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 유전도 많이 개발돼 있는 상태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별 영향을 받지않게 되나. ◇ 김 교수 =전쟁이 국지적 양상을 띠고 특수부대 중심의 제한된 영역에서 전개되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동지역에서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 73년 1차 쇼크때처럼 중동국가들이 친미국가에 원유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 타격이 클 것이다. ◇ 홍 교수 =이 경우 미국이 우리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