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남 마산시 마산자유무역지역내 노키아티엠씨의 GSM(유럽디지털 휴대폰)생산 공장. 전세계적으로 IT(정보기술)산업이 침체에 빠져들고 있지만 이곳 휴대폰 생산라인에서는 직원들의 바쁜 손놀림 속에서 열기마저 느껴진다. 부품 박스를 뜯어 조립·검사하고 완제품을 포장하는 생산과정이 물흐르듯 이어지고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단말기)라인 등 7개 공장도 마찬가지. 종업원 8백명,1만3천평 규모의 8개 공장전체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분위기다. 정문과 자재창고 앞에는 수출상품을 싣기 위한 차량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어 불황이라는 말은 딴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노키아티엠씨는 세계적인 휴대폰 생산업체 핀란드 노키아의 한국생산법인. 이 회사는 노키아의 14개 해외공장중 첫손에 꼽히는 효자공장이다. 지난 85년 3백여대를 처음 생산한 이래 오는 11월 중순 드디어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초로 1억대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질적인면에서도 노키아티엠씨는 정상급이다. 지난 94년 이후 단 한건의 클레임도 받지 않았을 정도다. 실상 98년 노키아가 모토로라를 누르고 세계 1위로 등극하는 데도 노키아티엠씨 공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노키아티엠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외국기업의 성공적 현지화를 위한 모범사례라는 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연착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 투자자와 한국 경영진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됐고 경영진의 일방적인 회사 운영으로 근로자들의 불신까지 가세,경영 전반에 누수현상이 빚어졌다. 품질 문제로 수출물량이 반품되는 경우도 잦아 한때는 수십억원의 적자 속에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6년 이재욱 현 회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우전자 출신의 이 회장은 노키아티엠씨 설립 20개월 만에 4번째로 사령탑을 맡은 인물.한국인 2명,일본인 1명 등 전임 CEO들이 모두 손을 든 다음이었다. '신바람 경영'을 내세운 이 회장은 우선 불신 해소를 위해 직원들과의 대화에 나섰다. 낮에는 생산라인에서 같이 먹으며 함께 일했고 저녁에는 회식자리에서 속내를 교환했다. 품질관리를 위해 2백50여개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당근과 채찍 전략을 적절히 구사했다. 물품대금은 15일 이내에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했다. '노키아와 거래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 나왔다. 반면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거래중단 등 가혹한 대가를 각오해야만 했다. 드디어 취임 1년만인 87년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사상 처음으로 연간 10만대 수출을 달성했다. 작은 규모지만 흑자로 돌아섰다. '이 회장,믿을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달라졌다. 각 팀이 생산성 향상에 발벗고 나섰다. 공정기술팀은 주파수 교란을 막아주는 통신차단 박스를 자체 개발했다. 개발팀은 휴대폰의 나사조임 속도를 15초에서 5초로 줄여 초고속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결과 생산공정이 짧아지고 연간 38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이수열 근로자협의회 대표는 "팀별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제안이 수십건씩 쏟아져 생산라인에 바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사협력에 힘입어 노키아티엠씨는 98년부터 3년 연속 국내 외국기업중 매출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24억달러의 매출(= 수출)을 올렸다. 이는 99년 14억달러에 비해 무려 71% 증가한 것. 이 회장은 "미국 테러사건과 세계 경기침체 등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나 취임 당시 세웠던 '세계 최고가 되자'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마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