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일 발표한 '미국 테러사태에 따른 경제부문 대응방안'은 준(準)전시상황을 가정한 일종의 비상경제계획이다. 국제유가가 장기간 상승할 조짐이 보이면 석유 수급조정명령권을 발동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유사시에 무제한적인 자금을 방출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정부가 느끼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그만큼 심각하다. 미국의 전쟁 개시가 유가 폭등을 부르고 자칫 본격적인 불황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악화되는 대외 경제환경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미국과 일본 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다. 정부의 단계별 경제운용 계획이 미국.세계경제 성장률 시나리오에 따라 달리 짜여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향력의 강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당초 올해 1.5%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1%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정부측 분석. 미국은 지난 1.4분기에 1.3%, 2.4분기에 1.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론 미국이 추가적인 경기부양 대책을 동원할 것이고 전쟁 발생시 방위산업체 등은 오히려 호황기를 맞을 것이라는 이유로 경기 회복을 낙관하는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런 호재들이 운송.보험업계의 심대한 타격과 민간 소비심리의 위축이라는 악재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경제 역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 위기의 한국 경제 =장기 침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초 기대했던 4.4분기 회복은 물건너 갔다는 얘기가 정부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미국 테러사태로 우리 경제가 세계적 불황,유가 상승, 달러화 약세라는 3중고를 겪으며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연구소는 '미 테러사태가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올 3.4분기중 국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에도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올해 연평균 성장률은 이 연구소가 당초 전망했던 2.8%를 밑돌 가능성이 높고 내년 경제성장률도 2%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또 유가 상승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로 올해와 내년중 국내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미국 등 세계경제 침체로 교역량이 축소됨에 따라 현재의 수출 부진 현상이 더욱 심해져 내년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유가 상승이 본격화되면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 정부의 대응 =정부의 정책기조는 '제한적 경기조절'에서 '전면적 경기부양'을 지나 '비상대책'으로까지 신속하게 옮아가고 있다. 권오규 재경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 경제동향점검반을 구성.운영하고 정부 합동 비상대책반, 부처별 실무대책반을 풀가동해 여건 변화에 따라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기로 했다.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도 준비하고 있다. 재정 금리 환율 등 거시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경기 침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현재 재정경제부 내부에서는 △5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내년도 예산안을 경기부양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수정 △금리 추가 인하 △국채 발행 등 적자재정 편성 △원화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지원 등의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