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해외부채 협상은 대우 처리 과정에서 비교적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해외협상 사상 처음으로 원금탕감(60%)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원금 전액상환에다 연체이자(가산금리)까지 붙여줬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대우의 총부채는 99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갈 당시 5백억달러(62조원)였고 해외부채만도 1백억달러에 달했다. 3백개가 넘는 해외사업장을 거느린 부채규모나 국내외 채권자수(국내 1백여개, 해외 2백여개)에서도 세계 최대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협을 뚫은 '유로터널'의 부채가 1백60억달러였고 지난 79년 거대 부실기업이었던 미국 크라이슬러의 부채도 20억달러에 불과했다. 대우 해외부채는 2000년 1월22일 최종타결로 평균 39∼40%만 갚도록 했다. 연체이자는 없다. 협상대상인 대우채권은 (주)대우 자동차 전자 중공업 등 4개 주력기업의 외화표시 무담보채권(시장채권 포함) 48억4천만달러. 해외채권단에 적용된 회수율은 △(주)대우 32.3% △자동차 전자 각 35% △중공업 67%, 해외현지법인은 31.5∼95.0%였다. (주)대우 회수율이 실사결과(18%)보다 높아진 것은 현지법인과 본사에 동일한 회수율을 적용했기 때문.해외채권단은 작년 4월 자산관리공사에 대우 채권을 매각(buy out)하고 대우와의 거래 관계를 청산했다. 이 때 자산관리 공사가 매입한 대우 자산들은 지금도 한창 매각작업 중이다. 대우 워크아웃이 결정되던 날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해외채권단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는 한국주식회사(Korea Inc.)를 보고 대우에 돈을 빌려줬다"며 정부와 오호근 기업구조조정위원장에게 항의했다. 대우채 협상이 성공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외채 협상과는 적지않은 차이도 있었다. 외채 협상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이었다. 대우는 개별기업의 채무였지만 외채 협상은 은행의 해외 채무가 협상의 대상이었다. 은행 채무를 갚지 못하면 곧바로 국가부도(모라토리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절박함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우채 협상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최악의 경우라도 배수진을 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외채 협상에서는 원금을 한푼도 탕감받지 못했고 만기연장시 조건도 △1년짜리 리보(런던은행간금리)+2.25% △2년짜리 리보+2.50% △3년짜리 리보+2.75%였다. 만약 당시의 한국정부가 "부도를 내려면 내보라"고 버텼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