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지난 97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개혁의 열풍에 휩싸이기는 했으나 부실기업 인수와 개혁에 대한 반발 등 때문에 기업간 카르텔과 독점, 그리고 국영기업의 득세가 여전하다고 전문조사기관이 9일 밝혔다. 싱가포르의 정치경제위기자문사(PERC)가 아시아 12개국에 주재하는 외국 기업인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홍콩, 일본 및 필리핀이 민간-국영 기업간 경쟁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조사 대상 12개국 가운데 6위에 랭크됐다. PERC 보고서는 "아시아에서 민영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기업개혁 압력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국영기업보다는 민간 소유 재벌들이 주로 해당됐다"고 지적했다. 즉채무가 과다한 재벌들이 국영은행들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일부 외국 투자자들이지분을 갖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정부 통제 하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로 인해 "많은 아시아국들에서 공공 부문의 기업 소유가 실질적으로증가했다"면서 "태국,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특히 그렇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태국과 인도의 경우 경쟁 강화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독재자 수하르토가 실각하면서 공공 부문의 기업 장악력이 오히려 회복되는 현상이빚어졌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중국 및 인도네시아가 조사 대상국 가운데 기업에 대한 국가 관여가 가장 심한 것으로 분류됐다. 반면 일본, 싱가포르 및 대만은 독점과 카르텔로 인한 왜곡이 가장 덜한 것으로 평가됐다. 보고서는 국가가 직접 경영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기업들이 "기업 개혁의 매개"역할을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면서 싱가포르와 중국의 경우 이런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명실상부한 경쟁력을 갖는 모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싱가포르의 경우 싱텔, DBS 금융그룹 및 싱가포르항공, 중국에서는 레전드 컴퓨터 그룹, 말레이시아에서는 페트로나스를 거명했다. 반면 국가 관여 때문에 "비즈니스 제휴가 (경제외적 요인에 영향받아)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뤄지거나 국가 안보란 명분에 밀리는 등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는 어쨌든 아시아 국영기업의 부상은 갈수록 현저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금융, 에너지, 전자 및 생명공학 등 모든 부문에서 이들 기업이 세계 10위권에 오르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조사는 해당국의 민간-공공 부문간 경쟁 정도에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경쟁 정도가 가장 낮을 경우 0점이 부과됐다. 이렇게 조사한 결과 홍콩이 가장 낮은 2.83점을 얻었으며 일본과 필리핀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또 대만, 싱가포르,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및 베트남 순이었다. (싱가포르 AFP=연합뉴스)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