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그렇지만 내년이 더 문제다. 내년에는 아예 적자 상황을 전제로 경영계획을 짠다는 각오다" 기업들이 초비상이다. 올 상반기만 해도 하반기에는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올해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는 기업은 이제 극히 드물다. LG전자 포항제철 등은 경기 저점을 내년 상반기로 예상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은 더 비관적이어서 내년 3.4분기는 돼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에선 내년엔 적자에 대비해 경영전략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칠 정도다. 내년 경영계획과 관련해 삼성전자 LG전자 포항제철 등은 흑자규모가 줄어들더라도 적자가 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우전자 코오롱 LG상사 현대중공업 등은 적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영계획을 짤 때는 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게 상례여서 다소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으나 대기업이 초긴축 경영에 들어갈게 뻔해 중소.중견기업들은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투자를 현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줄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LG화학은 연초에 당초 계획보다 25% 가량 줄인데 이어 하반기에도 10%가량 추가로 투자규모를 축소키로 했다. 대우전자도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최소한의 투자만 선별적으로 집행할 방침이다. 삼성전기는 당초 계획보다 올해 투자규모를 40%나 축소 운영하고 있으며 LG상사도 하반기 투자를 더 줄일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이미 두차례에 걸쳐 총 30% 정도의 투자를 줄였다"며 "내년도 투자계획은 오는 10월까지 세계 경제상황을 지켜본 뒤 확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기나 환율 등 유동적인 변수가 많아 내년도 투자계획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업체도 많았다. 기업들은 투자축소와 함께 마른수건도 쥐어짜는 식의 초긴축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SK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비해 긴축경영에 나설 방침"이라며 "현금유동성이 부족하면 개별회사나 자산을 외국기업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사업구조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제철도 올해 3천억원에 달하는 '극한적인 원가절감 운동'에 나선데 이어 적극적인 마케팅활동을 벌인다는 전략이다. 원가절감은 물론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벌여 현금유동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대기업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대우자동차와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처리 결과에 따라서는 내년에 중소기업들은 무더기 도산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세계적인 불황이 국내 경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기업구조조정 부진'과 '시장원리를 도외시한 정부의 경제정책'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고 지적,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구조조정을 서두르되 기업들이 시장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어려운 경제현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완화 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주문이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