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의 출자전환 문제가 과연 한.미간 통상마찰로 비화될 것인가. 파이낸셜 타임스는 23일 미국 에번스 상무장관이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하이닉스 출자전환에 대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담은(Strong-worded)'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산자부는 이에 대해 "아직 공식 접수하지 못했다"면서도 "내용을 파악하는대로 대응방안을 논의해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간 하이닉스 처리문제를 둘러싼 미국측의 '불만'은 여러 경로로 표출돼온 게 사실이지만 미국 정부각료가 우리 정부측에 공식적인 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보도가 사실이라면 뭔가 심상치않은 징후가 아니냐는 시각이 업계에 나돌고 있다. 물론 서한에 나타난 '항의'의 수위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자국내 경기불황의 장기화로 궁지에 몰린 미국 정부가 통상압력 강화 쪽으로 돌파구를 찾는 분위기여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이 하이닉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마이크론테코놀로지 등 미국 반도체업계의 입김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분석이 주류다. D램경기 추락으로 사상최악의 실적악화를 겪고있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하이닉스 문제를 통상이슈화하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마이크론사의 본거지인 아이다호 출신의 크레이그, 크레이포 상원의원은 올해 회사채 신속인수 문제를 한국 정부의 구제금융 조치로 규정, 이를 비난하는 공동결의안을 상원에 제출한데 이어 최근에도 비슷한 내용의 서한을 부시 대통령 앞으로 보냈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얘기다. 자국산업 보호의 전위대 역할을 맡고있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올해초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거론하며 통상압력의 고삐를 조여왔다. 이번 서한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증권애널리스트는 "겉으로는 WTO 운운하지만 속내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반도체산업을 어떤 식으로든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채권단의 이번 출자전환이 미국측의 주장대로 과연 WTO상의 보조금 규정에 위배되는 여부다. 산자부 관계자는 "채권은행들이 채권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본연의 상업적 판단에 따라 출자전환을 하는 것으로 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초 수면위로 떠올랐던 회사채 신속인수 문제는 직접적 논쟁 없이 1년간 '한시적'으로 운용한다는 약속 하에 유야무야됐었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미국 업계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6월 수입산 철강에 대한 201조 긴급수입제한조치에서 부시 행정부의 성향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가 업계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나마 '액션'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WTO 제소절차가 최소 1년이상 걸리는데다 자국산업 피해입증이 쉽지 않고 ▲하이닉스에 대규모로 투자한 미국계 금융기관들의 이해가 달려있으며 ▲저가 D램공급에 따라 수혜를 얻고 있는 미국 대형컴퓨터 업계의 입장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당장 '경고'이상의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