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는 등 고용문제가 일본 정부와 기업의 두통거리로 등장했지만 일본의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는 일손 부족으로 고민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서도 현장을 지켜야 할 젊은이들은 더럽고 힘든 일이라는 이유로 일터를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국인 근로자들로 일손 부족을 메우는 일도 만만치 않다. 사람이 달려 기계를 세워 둘지언정 외국인에게 생산현장을 맡기겠다는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경계심과 차별, 그리고 같은 일본인만을 고집해온 순혈주의가 여러 원인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외부로 문을 닫아 건 일본의 수많은 생산 거점 중에서도 유독 외국인 근로자들의 힘이 보석처럼 빛나는 제조업의 "메카"가 한군데 있다. 자동차 회사인 "혼다"와 오토바이 메이커 "야마하"의 창업 본거지로 유명한 시즈오카현의 하마마쓰다. 이 도시의 외국인 등록자 수는 지난달 말로 2만명을 돌파해 전체 인구의 약 3%까지 올라갔다. 대다수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등의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숙련근로자와 그 가족들이다. 하마마쓰의 산업과 지역경제에 대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기여효과는 단순히 숫자로 표현하기 힘들다.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들은 임금이 일본인보다 싸지만 숙련도와 근면성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전체 종업원 3백40명중 59명을 외국인 근로자로 충원하고 있는 자동차부품 메이커 베르소니카는 외국인들의 역할이 단순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용접공정의 분진을 자동으로 빨아들이는 장치를 개발해 청소작업을 대폭 합리화해 준 주인공은 외국인 근로자였다. 너트의 결품상황을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어내 인력감축에 도움을 준 종업원 역시 외국인 근로자였다. 이같은 현상과 관련, 자동차 시트제작회사인 오다의 고위 임원은 "전체적으로 본다면 일본 젊은이들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더 근면하고 기억력도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차 메이커인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열심히 일해 주는 종업원을 쓰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며 "일본 젊은이들은 직업을 너무 가린다"고 비판했다. 스즈키 회장은 "단순노동뿐 아니라 노동 시장 전체의 문호개방을 전제로 일본 사회의 틀을 다시 짜야 할 때가 됐다"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손을 높이 들어주고 있다. 산업 전문가들은 일본의 제조업 현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줄지어 상륙하기 시작한 시기를 1990년으로 보고 있다. 출입국관리법과 난민인정법 개정으로 일본 정부가 일본계 외국인의 재류자격을 완화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됐다는 지적이다.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한때 증가세가 꺾이긴 했지만 이들의 왕성한 일 욕심과 잔업을 시키려는 일본 업체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순조롭게 일자리를 늘려 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는 일본 사회와 산업 현장에도 큰 변화를 안겨주고 있다. 중견 금속업체의 고위 임원은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으면 인사 시스템도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정착률이 낮으면 첨단 기술과 숙련 업무를 가르쳐 줄 수 없다"며"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들을 정사원으로 발령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파견 사원 등 외국인 근로자의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가 많다 보니 의료보험, 자녀 교육 등 지방자치단체가 뒷바라지에 신경써야 할 일도 급속히 늘고 있다. 부정적 시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본 재계 인사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보는 눈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일본 경제가 앞으로 더 큰 아픔을 겪더라도 제조업 현장에 일본 젊은이들이 순순히 돌아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단순노동이라 할지라도 일본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 일손 부족과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본 기업들이 한시바삐 고정 관념을 떨쳐 버릴 것을 당부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