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과 생산적 복지'를 줄곧 강조해온 김대중 대통령이 올해 8·15 경축사에서 '내수경기 활성화와 기업규제 완화'를 새롭게 들고나왔다. 개혁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경기부양을 의미하는 내수확대와 기업규제 완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경축사는 종전과 다르다. 김 대통령은 지난 99년 광복절때만 해도 '재벌개혁과 생산적 복지'를 강도 높게 주장했었다. 이번 경축사를 통해 정책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인지 주목된다. 경제계에서는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경제를 더이상 놔둬서는 안된다는 현실 인식이 경제운영 방향에 반영된 것 아니냐"며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김 대통령은 "금융 기업 공공 노사 등 4대 개혁과 함께 내수시장을 확대해 경제 활력을 회복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내수시장 확대란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더 쓰고,주5일제 근무제로 소비를 늘리고,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미다. "기술개발 투자와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관련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겠다"는 얘기는 출자총액한도 제한이나 30대그룹 규제 등을 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경축사에서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은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김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 선회는 얼마전부터 예고돼왔다.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소비·투자심리가 나빠지면서 경제계 전반에서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줄곧 제기됐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제한적'이라는 관형어를 붙이긴 했으나 경기 활성화를 구조조정과 병행 추진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를 통해 개혁 일변도였던 그간의 경제운영 방침에 융통성을 발휘,경기활성화 쪽에도 어느 정도 무게를 싣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에도 불구,현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원칙인 개혁과 구조조정이 느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김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도 "지난 3년반은 개혁을 통해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로 들어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힘써온 시기였다"며 "유일한 대안은 개혁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이 투명해야 하고 기업지배구조도 개선돼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래야만 기업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고 주식시장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게 김 대통령의 생각이다. '기업이 규제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투명하게끔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업규제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는 김 대통령의 기본 철학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김 대통령은 신(新)노사문화 창출과 차세대 성장산업 육성에도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자들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경영성과를 공정하게 배분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IT)과 생명산업 문화콘텐츠 환경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키고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관련 분야 육성 및 지원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