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신경제로 일컬어져 왔던 미국의 지속적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정보통신 기술(IT)의 역할에 대해서 의구심이 일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인해 초래된 정보통신산업의 위기는 세계경제 전반의 침체를 예고하면서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IT 대란"이라든가 "IT 불황"과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고,심지어 IT산업을 기반으로 했던 신경제가 허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기술에 의한 경제구조의 변화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장미빛 환상도 아니었고,그렇다고 일거에 사라지고 말 거품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에 의한 혁신적 변화가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앞으로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차분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명한 미시경제학자인 배리언(H. Varian)교수의 혜안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과거 경제구조의 변화를 초래했던 혁신적 기술발전 과정이 대체로 다섯 단계를 거쳐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이 개발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는 실험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발명가나 혁신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이 성공하게 되면 다음으로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자본화 과정을 거치게 되고,본격적으로 생산과 마케팅에 경영의 개념이 도입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에서 대체로 발명가는 기업가에게 바통을 넘기게 된다. 이제 새로운 산업의 기업가들은 적자생존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치열한 경쟁의 국면을 맞게되고,살아 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한 통합이 이루어진다. 고도의 경쟁이 진정되면 마지막으로 제품의 표준화,비용의 축소,시장을 위한 경쟁에서 시장 내에서의 경쟁으로의 전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고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배리언 교수는 산업혁명이나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전기 및 자동차의 발명과 같은 혁신이 이같은 과정을 거쳤음을 지적하면서,오늘날 IT혁명에도 이를 적용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 처럼 IT로 대표되는 신기술 산업은 기존의 생산방식과는 다른 경제논리로 설명되어야 할 뿐 아니라,경기변동을 보다 급격하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굳이 불가역성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IT혁명이라는 대세를 부인할 수 없다면 현상에 매달리기 보다는,이같은 IT산업의 특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체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오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벤처는 더 이상 일확천금의 신기루도 아니고, 바람빠진 공같은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도 안된다. 벤처가 기존의 산업과 다른 점은 기술의 내용이지 그 발전 과정이 아님을 되새겨볼 때이다. 노택선 < 한국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