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공개된 준칙을 정해 놓고 이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정부의 판단에 근거해 필요에 따라 정책을 시행할 것인가. 이것은 경제학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준칙 대 재량(rule vs. discretion)'의 논쟁이다. 준칙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경제 내에는 '자기보정적 장치(self-correcting mechanism)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정부가 여기에 끼어들어서 이리 저리 정책을 휘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황이 되면 점차 임금과 물가가 하락하게 되고 이에 따라 다시 고용이 늘고 수요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다음의 요인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먼저 경제의 자기보정적 장치가 얼마나 빠르게 작동하느냐다. 그러나 대체로 경제의 자기보정적 장치가 작동하는 데는 임금과 물가의 하락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제주체들로 인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두번째로 경제정책의 효과가 얼마나 빠르게 나타나는가도 중요한 요인이다. 정책의 시행으로부터 그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 사이의 시차가 길다면, 그 사이 경제상황이 바뀔 수도 있고 따라서 이미 시행한 정책은 엉뚱한 처방이 될 수 있다. 정책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가, 서서히 나타나는가를 가지고 재량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책시행을 자동차의 운전에, 준칙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커다란 선박을 조정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세번째는 경제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가에 달려 있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정책효과의 시차문제와도 연관돼 있다. 만일 경기침체의 정도와 지속기간 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정책 효과의 시차를 감안해 적절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으므로 재량적 정책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론상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경제예측을 공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의 정책이 준칙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재량적으로 시행될 것인지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사안과 상황에 따라서 정부가 판단해 정책을 수립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정부가 이같은 판단을 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경제정책의 수립에 있어서 정치적 배려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소비심리는 나아지는 반면 투자심리는 계속 위축되는 등 경기의 향방에 대한 판단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다각도로 추진할 모양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입김으로 정부가 재량에 따른 정책을 시행한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될 일이다. < 한국외대 교수(경제학) tsroh@maincc.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