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약품 도매업계가 `쥴릭'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스위스계 의약품 유통회사인 쥴릭(Zuellig)이 국내 시장에 독점 공급하는 신약(오리지널약)들을 놓고 400여개 국내 도매업체들이 사분오열의 볼썽사나운 형국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쥴릭이 지난해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만들어 놓은 이상한 의약품 공급 구조에서 시작됐다. 쥴릭은 지난해 4월 국내 유수의 제약사 H약품과 손을 잡고 한국 법인 `쥴릭 파마'을 설립한 뒤 40여개 대형 도매업체에만 의약품을 공급하고 동시에 규모가 큰 4천여개 약국과는 직거래를 시작했다. 문제는 쥴릭 파마에 지분 참여를 하고 있는 H약품과 다른 9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자사의 일부 오리지널약을 쥴릭에만 공급, 쥴릭을 통하지 않고는 처방 빈도가매우 높은 이들 신약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쥴릭 판매망에서 제외된 360여개 중소 도매업체들은 약국영업에 있어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특히 작년 7월 의약분업 시행 이후에는`쥴릭 약'을 구하지 못한 도매업체들이 약국의 처방약 구성을 맞춰주지 못해 거래처를 잃는 상황이 속출했다. 쥴릭에 일부 신약을 독점 공급하는 다국적 제약사 중에는 글리벡으로 성가가 높은 노바티스를 비롯, 바이에르, 베링거잉겔하임, 아벤티스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쥴릭 판매망에 들어가지 못한 도매업체들은 의약분업 이후 전체 의약품유통량의 70% 이상을 소화하고 있는 약국 영업에서 심각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복지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쥴릭에서 촉발된 유통구조의 왜곡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한 130여개 중소 도매업체들은 이달 들어 `쥴릭투쟁위'(일명 쥴투위)를 구성, 전체 도매업소에 동등한 조건으로 약을 공급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회사는 이달초 의료계와 약계 인사들에게 쥴릭과의 거래 중단을 촉구하는성명서를 발송하는가 하면 신문광고나 가두 캠페인 등을 통해 쥴릭 공급체계의 문제점을 알리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25일에는 의약품도매협회의 이희구 회장과 임원진이 서울 화곡동협회 회관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시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쥴릭과 일명 `쥴참협'으로 통하는 40여개 친쥴릭 도매업체들은 한 발도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좀처럼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쥴릭측은 오히려 쥴투위가 벌여온 일련의 행위들이 명백한 영업방해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23일 쥴투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동시에 쥴투위의 핵심 인사들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쥴릭의 독과점적인 의약품 공급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했으나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그럼에도 쥴릭의 그같은 행위가 약의 원활한 유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쥴릭은 1920년 설립된 의약품 유통 전문회사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 의약품 유통시장의 60% 이상을 점유, 연간 미화 2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쥴릭은 지난 96년 H약품과의 제휴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려다 도매업계와 의약계의 반발에 밀려 무산됐으나, 국내 진출 첫 해인 작년 1년간 국내 의약품도매업 총매출(1조5천억원 추정)의 10%에 육박하는 1천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쥴릭은 올해매출 목표를 3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기천기자 che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