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등을 이을 '새로운 주력상품'의 내부적 기술기반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선진기술국과 중국사이에 끼여 산업의 구조적 변화 내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고민이다. 7천개가 넘는 기업연구소와 고급인력이 몰려있는 대학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연구소가 탐이 나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외국기업이 나타날 정도가 아니고,대학의 연구능력 역시 새로운 산업의 문을 열어줄 것 같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CDMA 등의 기술적 기반을 잉태했던 정부출연연구소에 기대를 걸만할까. 한마디로 아니다. 사람이 떠나고 비전을 상실하는 등 최대의 위기상태다. 35년만의 새로운 과학기술 모법인 '과학기술기본법'을 지난 17일부터 시행했다든지,내년도 과학기술예산을 전체예산의 5%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정부의 자랑이 무색해진다. 과학기술계 정부연구소의 위기는 여러가지로 진단할 수 있으나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게 있다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정부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연구소 지배구조가 그것이다. 기초기술 공공기술 산업기술 등 3개 '연합이사회'를 신설,각 부처 소속의 과학기술계 연구소를 이 우산아래 편입시켰다. 취지는 국가적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었고,벤치마킹 대상은 독일의 막스플랑크(기초연구) 프라운호퍼(산업기술)등 연구소 집단체제였다. 결과는 어떤가. 연합이사회는 연구소를 지도·경영하는 것도 아닌,아무 권한도 없는 옥상옥의 상위조직일 뿐이다. 그나마 연구소의 원장 인선에 간여하지만,최근 정부가 정부측 이사는 놔두고 민간측 이사만 줄이는 바람에 이마저도 자율성을 의심받고 있다. 게다가 연구소에 관한 한 가장 마인드가 취약한 국무조정실이 행정적 상위조직이다.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획예산처 등의 각종 지침과 평가행정에도 구속돼야 한다. 과거 관할부처의 직ㆍ간접적인 간섭과 압력도 거의 그대로다. 이쯤되면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기형적인 연구소 지배·간섭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연구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운위하고 신산업·신기술의 원천연구를 기대하는건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개혁의 이름으로 시도됐으나 누구하나 수긍하는 이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이를 인정하고,연합이사회를 비롯 연구소의 지배구조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