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불안정한 나라 안팎의 시장환경에 대비,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제로금리'에 가까운 현재의 저금리 시대에 회사채 발행을 통해 현금을 충분히 확보한다는 방침 아래 신용등급을 올려 회사채 발행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자구노력 등을 강화하고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포항제철 등 대기업들은 하반기에 회사채 발행, 고정자산 처분 등으로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들은 급변하는 국내외 시장환경에서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우선 현금을 확보한 뒤 성장성 및 수익성이 담보되는 신(新)사업영역을 찾게 되면 확보한 유동성을 토대로 경영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향후 경제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보고 계열사별로 만기도래 회사채의 차환발행, 효율적 투자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를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삼성은 특히 회사채 발행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올 경영계획을 세울때부터 신용등급 상향에 주력했으며 이미 삼성전자가 국내 최고등급인 AAA 를 받는 등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기 침체로 영업환경이 불투명한 점을 감안,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총 1조9천억원의 차입금 가운데 일부는 갚고 1조~1조5천억원은 회사채 차환발행 등의 방법으로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 당초 7조3천억원으로 잡았던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1.4분기 이후 6조1천억원으로 줄인데 이어 하반기에는 5조1천억원으로 다시 축소,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현대자동차의 하반기 만기도래 회사채는 9천6백억원에 이른다. 현대차는 그러나 국내외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받아 회사채 차환.신규발행 조건이 개선됨으로써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조달금리가 낮아져 작년에 비해 이자부담이 1천억원 이상 개선됐다"며 "현재 확보해 놓은 현금 사정도 넉넉하지만 경기침체 등에 대비, 유동성 확보에 `고삐'를 죄고 있다"고 밝혔다. LG그룹도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 가능성에 대비,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산매각 등 강력한 구조조정과 외자유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은 재무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4천5백억원가운데 2천억원은 영업이익과 단기자금으로 상환하고 나머지 2천5백억원만 차환발행할 방침이다. LG전자는 하반기 만기도래 회사채가 5천5백억원으로 안정적인 유동성 유지에 큰어려움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경기침체의 장기화에 대비, 지난 달부터 경상비를 20%가량 삭감했고 보유중인 신세기통신주식 2백60만주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철강업계도 지난 98년 발행한 고금리 회사채 만기가 하반기에 집중되고 경영여건까지 불투명해 자금시장 여건이 좋을 때 미리 자금을 확보하자는 판단으로 현금확보에 여념이 없다. 최근 만기 5년, 발행수익률 연 6.94% 조건으로 무보증채 2천억원어치를 발행한 포항제철은 올 들어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7천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이자금을 만기도래 회사채 상환 및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포철은 이번 회사채 발행을 통해 연 10~11%였던 회사채 금리가 7%대로 떨어져 자금조달 비용의 감축을 기대하고 있으며 환율 변동 리스크가 높은 외화부채를 원화부채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동부제강도 이달 들어 무보증채 3백억원어치를 발행하는 등 올 들어 2천4백3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데 이어 오는 9월 입금예정인 서울 공장부지 매각대금 8백77억원 등 3천3백여억원의 유동성을 외환위기 직후 발행한 연 20%대 고금리 회사채 상환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밖에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해 해외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해 들여온 6천5백만달러로 상반기에 단기채무를 모두 상환했으며 최근에는 보유항공기 2대를 매각, 1억8천7백40만달러를 확보했고 신용카드 매출채권을 담보로 3천억원의 ABS를 발행, 현금을 쌓아놓았다. 현대건설은 채권단의 출자전환 이외에 유상증자, 전환사채(CB) 인수로 현금 약 1조4천1백억원이 유입됐으며 하반기 회사채 만기도래분 4천8백억원은 신속인수 대상인 관계로 20%인 약 1천억원만 필요한 상황이어서 상당히 여유가 있다. 한솔그룹은 팬아시아페이퍼 지분 매각대금 4천6백억원 등 1조5천억원 가량의 가용자금이 확보돼 있어 유동성은 넉넉한 편으로 추가적인 유동성 확보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다. 다만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로 조달한 일부 자금은 저금리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한국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