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고 없는 참사는 없다. 출근길 교통사고조차 수도 없는 원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41개 계열사가 전세계에 3백여개 사업장을 돌리고 있던 거함 대우였다. 어떤 사람은 '양치기와 늑대의 게임'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수도 없이 울린 비상벨'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 김 회장 한 사람 외엔 모두가 알고 있던 종말이 오기까지는 여러 번의 변곡점들, 피를 토했던 논쟁과 불화, 죽이려는 자와 살려는 자의 투쟁,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지나쳐버린 절대회생의 기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운명이라고도 말했다. 처음으로 요란한 비상벨 소리를 울려댄 것은 일본계 노무라 증권이었다. 1998년 10월29일. 일본 최대 증권회사인 노무라 증권 서울지점에서 A4용지 4쪽 분량의 간단한 보고서를 외국인 고객들에게 한정 배포했다.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Alarm bells ringing for the Daewoo Group). 길게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간단했다. 보고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대우는 주가마저 낮아 에쿼티 파이낸스(주식을 통한 자금조달)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대안은 자산 매각뿐이지만 팔릴 만한 회사가 없다" 보고서는 "따라서 대우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대우에 긴급대출을 해줄 가능성은 있지만 해외채권이 회수되기 시작하면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썼다. 문제는 공론화였고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는 것이었다. 이것을 노무라가 달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국사람은 외국인의 입을 통해 말하고 듣는 버릇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그 시점부터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보고서의 근거가 된 통계자료가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센터에서 나왔다는 점은 아이러니였다. 김 회장은 바로 전경련 회장이었다.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