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 상장기업중 지난해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던 한국전기초자. 브라운관 유리 제조업체인 이 회사의 최대 현안은 생산이나 판매가 아니다. 물건을 쌓아둘 창고를 구하는 일이다. 구미 공장의 4개 창고가 이미 꽉 찼다. 공단내 부지를 매입, 야적장까지 만들었지만 늘어나는 재고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백50만여개가 재고로 쌓여 있다. 하루 출하량이 16만개다. 하루에만 3백~4백평의 창고가 추가로 필요하다"(총무팀 김재근 팀장) 동종 업체인 삼성코닝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공장내 빈터에는 재고가 빼곡이 들어찼다. 직원용 주차장까지 야적장으로 사용된지 오래다. 브라운관 제조업체인 오리온전기도 사정은 마찬가지. 팔리지 않은 재고 물량만 1천2백만개. 지난달 가동일수가 20일이 채 안됐다. 11개 생산라인중 7개만 돌아가고 있지만 이마저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과 LG전선 광케이블 공장이 예외적으로 정상 가동중이긴 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자사 소화물량과 중국 등 일부 해외지역의 특수에 따른 것일 뿐 휴대폰 업계 전반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미에 있는 거의 모든 공장이 재고창고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창고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고 있다"(공단관리본부 황하중 정보조사팀장) 지난 5월 구미공단의 평균 가동률은 81.3%. 지표상으로는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구미공단은 설립 이후 매년 20% 이상씩 성장해 왔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가동률이 85%를 넘었었다. 지금은 사정이 IMF사태 때보다 더 나쁘다는 얘기다. 5백37개 입주업체중 설비를 돌리고 있는 회사는 4백68개. 10%를 넘는 69개 업체가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각 업체마다 조업일수 단축 등 비상 경영계획에 들어가고 이에 따라 직원들은 얇아진 월급 봉투마저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구미공단의 한 업체 근무자는 "일하지 않는 날은 기본급의 60%만 받는다. 이달엔 조업일수가 보름도 안된다. 통상임금에 각종 수당까지 포함되는 것을 감안하면 월급의 절반도 못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기술직 7년차라고 밝힌 또다른 회사 근무자는 "지난 3월에 2백50만원을 받았지만 지난달에는 80만원밖에 못받았다. 3분의 2가 줄었다. 도저히 생활이 안된다"고 말했다. 구미공단은 지금 부도 소문과 라인 이전 소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침체돼 있다. "IT(정보기술) 경기의 침체로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집단휴가를 떠나는 이달말부터는 공단 전체가 적막할 겁니다"(하이닉스반도체 지원팀 이익규 과장) 전자산업의 메카 구미공단의 현주소다. 구미=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