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남(43) 이지디지탈 사장은 여성벤처업계의 "대모"로 통한다. 지난해 설립된 여성벤처협회장을 맡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스케일이 큰데다 여성기업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뛰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적극성과 배짱이 오늘날 그를 연 3백억원의 매출을 넘보는 통신용 광계측기분야의 알짜기업 여사장으로 키워낸 셈이다. 여성으로서 요즘의 이 사장처럼 바쁜 경우도 드물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공식 직함만도 여성벤처협회장 등 10여개. 각종 정책토론회에서 할 말 다하는 이 사장의 인기는 단연 최고다. "좋은 말만 하자고 바쁜 사람들 모아놓은건 아니잖아요. 할말을 해야 문제가 풀리죠" 항도 부산. 요즘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된 부산이 이 사장의 고향이다. 딸만 다섯인 딸부잣집의 셋째로 태어났다. 무뚝뚝한 아버지로부터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지만 유년과 소녀시절,그는 언제나 무엇을 이루고 싶은 꿈을 버려본 적이 없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가족 뒷바라지만 하고 살겠다는 평범한 생각보단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어렸을 적부터 더 무겁게 느껴온 것이다. 대학(동부산대 경영학과)을 졸업하고 그가 처음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직장은 광덕물산. 부산 소재의 섬유 모피 전자제품 제조업체였다. 평범했던 학창생활때만 해도 내재됐던 그의 수완은 바로 이 첫 직장에서부터 발휘되기 시작한다. 영업부에 배속된 그의 업무에 대한 집착력은 대단했다. 한번 임무가 주어지면 몇날 며칠 바이어를 찾아다니며 조르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목표를 달성해냈다. 당시로선 시장이 전혀 개척되어 있지 않던 남미지역에 처음으로 밍크코트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을 때,그를 이제 겨우 입사 3년차의 여사원 정도로만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사 3년만에 국내외 의류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를 조석훈 광덕물산 회장은 눈여겨보고 있었다. 같은 회사의 촉망받던 엔지니어 출신의 지금 남편도 조 회장의 중매로 만났다. 때마침 광덕물산은 전자사업부 분사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전자사업부를 맡아보겠다고 나섰다. 당돌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광덕의 조 회장은 몇몇 후보중 최종적으로 그를 택했다. 그의 남편이 유능한 엔지니어이기도 했지만 그의 사업수완을 더더욱 미더워 했기 때문이었다. 1988년, 이지디지탈의 전신이 된 서현전자는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나이 31세때였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그 시절, 그는 거친 공장사람들과 밤을 새워가며 일주일의 절반을 회사에서 보냈다. "처음 5년간은 주문자상표로 산업용 계측기를 생산했죠. 하지만 93년부터는 해외로 다리품을 팔아가며 바이어를 발굴했습니다. 제 노력의 성과가 현실화되는게 재미있었어요. 사업은 제 체질이구나 생각했죠" 그만의 독특한 화술과 신뢰를 주는 행동은 해외 바이어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젊은 여사장이란 점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때로는 그를 여사장이 아닌 30대의 젊은 여자로 보는 바이어들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빨리 40이 넘어 늙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고. 회사를 위해선 여성의 최대 바람인 '아름다움'도 포기할 각오였다. 늘 도전하는 자세로 일하다 보니 때때로 일이 뒤엉키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려움도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 99년 LG이노텍의 범용계측기 사업부를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LG측으로부터 첫 제의를 받자 이 사장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수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위에서도 무모한 짓이라며 말렸고 LG 역시 이지디지탈을 못미더워하는 눈치였다. 회사의 비전을 아무리 설명하며 뛰어다녀도 LG는 최종 계약을 미루기만 했다. 마침내 이 사장은 LG의 담당임원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 설득 끝에 최종 담판을 성사시켰다. 이를 계기로 이지디지탈은 단순 산업용 계측기 업체에서 통신용 광계측기 전문회사로 한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지난해초에는 미국 통신 장비업체인 ADC텔레커뮤니케이션스와 전략적제휴를 맺었다. 인터넷 관련 IT(정보기술)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한 순간이었다. ADC와의 제휴에 관한 일화 하나. 우연한 기회에 이 사장을 알게된 ADC측 임원이 한달의 기한을 주며 제안서를 제출해 보라고 권했다. 그 분야에 문외한이던 그가 네트워크 장비 전문가를 찾아다니기를 한달. 제안서 마감을 정확히 하루 남기고 찾아낸 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을 반 강제로 호텔방으로 끌고와 10시간만에 제안서를 완성해냈다. "10시간만에 만든 제안서가 얼마나 허술했겠어요. 하지만 제 열정에 ADC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는 사업의 우선 조건을 사람 사이의 신뢰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그의 신념이다. 지난해 이지디지탈이 올린 매출액은 2백55억원. 올해는 3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통신용 광계측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하는 것이 이지디지탈의 목표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