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기업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첨단 벤처기업들에게 밀려 한동안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소외감에 자극되었을까. 최근 많은 굴뚝기업들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고부가가치 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것.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파던 우직한 모습은 이제 공단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벤처열풍에 휩쓸려 무작정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등 인터넷 사업에 어설프게 뛰어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내세우며 경쟁력있는 품목을 골라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공격적인 탈바꿈을 통해 벤처신화가 부럽지 않은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굴뚝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일주일간 열렸던 중소기업주간행사에서 각종 훈.포상을 수상한 업체들의 면모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러한 전통제조업체들의 발빠른 변신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된다. 굴뚝기업들 어떻게 변하나 =서울 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에 위치해 있는 제일콘크리트공업(대표 이석주)은 지난 70년대부터 건설업계에서 쓰이는 레미콘을 생산해온 전형적인 중소기업.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지난 97년 국내 최초의 "도심형 레미콘 시설"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소음,분진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친환경 장비다.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떠오른 "환경"을 일찌감치 산업현장에 접목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ISO9001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경북 고령군 소재의 삼진(대표 성목용)은 생산품목의 단일화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는 전통 굴뚝기업이다. 삼진이 생산하고 있는 PE천막지는 공사장이나 차량에 덮개용으로 사용되는 위험방지용 천막. 이전에는 피이 타포린,피피백,컨테이너백 등 다양한 합성수지 원단을 생산했지만 최근 PE천막지 한 품목으로 생산품목을 단일화하고 회사의 역량을 한곳에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PE천막지의 제조공정을 완전 자동화함으로써 중소기업 혁신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부산에 있는 유일고무(대표 남정태)는 사양산업으로 홀대받고 있는 고무산업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신산업으로 탈바꿈 시킨 업체다. 방진 방음고무 등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기능성 고무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이 회사는 매년 매출액의 10%이상을 연구 개발에 재투자 하는 등 신기술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해외업체와의 기술제휴와 컴퓨터 설계기술의 도입을 통해 품질향상에 매진하고 있다. 매년 우수사원을 선발해 해외기술연수교육을 보내는 등 대기업 못지않게 인재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번 중소기업주간행사에서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한 대림제지(대표 권오달)는 자원 재활용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있는 업체다. 폐지를 활용해 연간 20만톤에 달하는 골판지원지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국내에서 수거한 재활용폐지 23만5천톤을 사용해 2백59억원의 자원을 절약했다. 물론 이러한 생산비용의 절감을 고스란히 회사의 이윤으로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 =검증받은 생산설비와 노하우를 갖고 있는 굴뚝기업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대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수익기반이 의심스러운 닷컴기업들과는 달리 확실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들은 투자가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고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지적했다. 따라서 굴뚝기업들의 새로운 변신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품 업체에 매여 수동적으로 부품을 납품해 오던 굴뚝기업들도 점차 독립적인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는 추세다. 고부가가치 신규 사업진출은 지속적인 성장의 발판이 되는 동시에 치열해지는 국제화 경쟁속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속에서 중소기업이야말로 "국가경제의 근간"이자 "경제민주화의 첨병"이라는 사회인식이 하루빨리 일반인들의 가슴에 자리잡아야 한다.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의 중요성에 집착한 나머지 전통산업의 역할과 중소제조업의 활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뒷편으로 물러나 있었던게 현실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과 지속적인 발전은 낙후된 중소기업부문의 경쟁력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국가 총생산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위상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