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31일 확정,발표한 "기업 경영환경 개선조치"는 재계가 건의해 온 규제완화 요구사항을 대거 수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구조개혁"의 명분 아래 고수해 왔던 출자총액 부채비율 외화차입 등의 규제조치를 현실에 맞춰 신축성 있게 운영키로 한 것 등은 "결단"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정부는 최근의 수출 및 경기 부진을 감안, 수출.투자 촉진 및 기업 구조조정 원활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은 과감하게 수용했음을 강조했다.

정부 여당은 그러나 그 대가로 재계가 반대해 온 집단소송제 도입 등 11개 항목의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보완대책''을 동시에 내놓았다.

기업활동의 ''자율''폭을 넓혀준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묻겠다는 얘기다.

◇ 사라진 규제 =정부 여당은 재계가 요구한 공정거래.금융.세제 등 23대 분야에 걸친 72개 규제완화 건의사항중 34개 항목을 수용키로 했다.

요구 항목의 절반을 받아들인 셈이다.

또 상당수 핵심적인 항목을 수용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특히 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조치를 철폐키로 한 것 등은 달라진 기업경영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높은 개선 조치로 평가된다.

일부 시민단체가 대기업그룹 소속 금융기관들에 의결권을 허용할 경우 그룹 총수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남용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해온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등 몇몇 초우량 거대기업들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6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산업자본의 ''역차별''이 초래되며 국익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재계의 입장을 정부가 최종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그러나 최대 요구사항이었던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의 축소 내지 폐지를 ''중.장기 검토과제''로 넘겨 기업들의 아쉬움을 샀다.

진념 경제부총리는 "이들 문제를 건드리면 재벌 정책의 후퇴로 비쳐질 수 있으며 자본시장과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 개혁을 지속한다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 새로 나온 규제 =11개 항목의 ''보완 대책''을 내놓음으로써 기업들에 ''자율 확대에 상응하는 책임경영 확립'' 요구도 분명히 했다.

6월중 전체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 실태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바탕으로 투명경영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집단소송제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키로 한 것 등이 대표적 예다.

또 분기보고서에 대한 공인회계사 검토제도를 올 2.4분기 보고서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키로 하는 등 회계 측면에서의 기업 감시를 강화키로 했다.

회계정보공시 기준을 강화하는 등 공시제도 역시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면 손질키로 했다.

원론적으로는 기업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 같지만 집단소송제 등의 경우 소송 남발로 경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신규 투자도 제때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재계 반발이 적지 않았던 터라 향후 기업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