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출신의 토박이들이 반도체 컴퓨터 관련 다국적 기업의 한국법인을 이끌고 있어 화제다.

김명찬 인텔코리아 사장, 최준근 한국HP(휴렛팩커드) 사장, 신재철 한국IBM 사장, 손영석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코리아 사장.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의 대표적 한국인 CEO(최고경영자)로 손꼽히는 이들은 모두 국내파다.

우선 외국거주 경험이 없다는게 같다.

대학은 모두 국내에서 나왔다.

CEO가 갖추어야할 자격증처럼 인식되고 있는 MBA 졸업장도 없다.

전자공학 아니면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점 역시 이채롭다.

눈에 띄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국내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과 70-80년대에 일찌감치 외국계기업으로 옮겼다는 점.

최준근 사장과 손영석 사장은 삼성전자, 김명찬 사장은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신재철 사장은 동해전력개발에서 근무하다 현 회사로 직장을 옮겨 CEO 자리까지 올랐다.

국내 대기업에서 보고 배운 한국식 경영의 장점과 다국적기업이 추구하는 글로벌경영의 조화가 이들을 톱의 자리로 밀어올렸다고 보면 된다.

김명찬(46) 사장은 88년 4년간 다니던 럭키금성상사를 떠나 인텔코리아로 적을 옮겼다.

입사 12년만인 올 3월에 인텔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사장실도 따로 없고 전용운전기사도 없다.

일반직원과 똑같은 크기의 큐비클을 사용하고 손수 운전한다.

또 신입사원이라도 언제든지 사장과 1대 1로 면담할 수 있도록 원온원(One on One) 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김 사장은 외국기업 문화가 아직도 낯설다고 말한다.

그는 "한달에 한번정도 홍콩에서 아시아 지사장들과 만나는데 질문과 발표가 자유롭게 오가는 토론문화가 아직 익숙지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최준근(48) 한국휴렛팩커드(HP) 사장은 84년 삼성전자와 휴렛팩커드가 합작형태로 한국HP를 설립할 때 8년간 다니던 삼성전자에서 한국HP로 옮겨앉았다.

95년 43세 나이로 CEO로 발탁돼 주위를 놀라게 했고 지난해에는 매출을 1조5천억원으로 전년대비 70%나 끌어올려 HP를 주한IT외국회사중 매출 1위에 랭크시켰다.

최 사장은 외국계회사의 장단점에 대해 "오너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최고경영자에게 최대한의 자율이 보장되는 반면 책임도 무겁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회사의 국적과 관계없이 한국사회에서 존경받는 회사를 만드는 것.

IMF 외환위기때 외국기업 최초이자 최다액수인 3억7천만달러의 투자를 본사로부터 끌어왔고 IMF 시기를 넘기자마자 연봉과 PS만 인정한다는 본사를 설득해 직원들에게 1백%씩 격려금을 나눠 주는 등 "한국적인 외국기업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손영석(46)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사장은 "로컬업체보다 외국계회사가 적성에 맞는다"고 말한다.

"거액을 준다해도 로컬업체로는 옮길 마음이 없습니다. 직원들과 자유롭게 터놓고 지내는 생활이 편해요"

그는 실제로 직원들과 같은 휴게실을 드나들며 커피를 타 마신다.

휴게실에서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수원가전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첫 출근 때 침낭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수원에서 밤11시까지 일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생활이 힘들어서" 회사를 옮겼지만 이제는 자유로운 외국기업 문화를 홍보하고 다니는 TI 사장겸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으로 변신했다.

신재철(54) 한국IBM 사장은 4년간 동해전력개발에서 직장경험을 쌓고 73년 IBM에 입사한 외국계회사 맏형격이다.

94년부터 2년간 IBM 아시아태평양에너지서비스산업 총괄본부장을 맡으면서 민항기 조종사보다 비행시간이 많았을 만큼 해외출장을 자주갔다.

그는 사장이 된 후에도 출장이 잦지만 일반직원과 같은 호텔에서 자고 같은 클래스의 비행기표를 끊는다.

사장이라고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특급호텔에서 묵는 관행이 IBM같은 다국적 기업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 신 사장은 사장 취임후 출근복장을 비즈니스캐주얼로 바꾸고 "TELL CC(이름의 이니셜을 딴 명칭)"라는 일종의 소원수리제도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고충을 사장에게 직접 전달하는 이 제도에 따라 신 사장은 평균 1년에 80건의 TELL CC를 처리하고 직접 답변한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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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김명찬 < 인텔코리아 사장 >

* 55년생
* 아주대 전자공학과
* 럭키금성상사(83~88년)
* 88년 인텔코리아 입사(영업부 시스템세일즈엔지니어)
* 2001년 인텔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 최준근 < 한국HP 사장 >

* 53년생
* 부산대 전기공학과
* 삼성전자(75~84)
* 84년 한국HP 입사
* 95년 한국HP 대표이사 사장

<> 신재철 < 한국IBM 사장 >

* 47년생
* 서울대 전기공학과
* 동해전력개발(69~73)
* 73년 IBM 입사
* 96년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

<> 손영석 < TI코리아 사장 >

* 55년생
* 성균관대 전자공학과
* 삼성전자(수원가전팀 78~83년)
* 83년 TI반도체 입사(영업부장)
* 97년 TI 대표이사 사장(2001년4월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