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논쟁''으로까지 치달으며 재계와 정부,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기업규제 완화 문제가 ''해법''의 가닥을 잡았다.

정부와 재계가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정.재계 간담회를 갖고 내놓은 해법은 경제력 집중 해소라는 기업 정책의 ''총론''은 유지하되 현실적으로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 장치들을 최대한 걸러낸다는 것.

공정거래 관련 등 주요 정책개선 과제별로 태스크포스를 만들기로 하는 등 ''액션 플랜''이 분명히 제시됐다는 점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재계는 별도의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이달말까지 제도 개선안을 도출한 뒤 즉시 시행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는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하는 등 상세한 일정까지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말 그대로 ''논의''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 명분 살린 규제완화 =이날 간담회에서 정.재계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투자 및 수출 증대 등 최근 위축된 기업 활동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를 단행해야 할 시점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얘기다.

재계는 △투자 촉진을 위해 부채비율 2백% 원칙을 신축 적용하고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를 확대해 주며 △세제혜택도 늘려줄 것 등을 제시했다.

정부가 이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유의할 대목이다.

주목되는 것은 정부측에서 ''개혁 원칙의 큰 틀'' 고수를 분명히했고 재계도 이런 ''원칙''에 해당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요구를 자제하는 등 상호 입장을 배려하며 해법을 찾기로 했다는 점이다.

정부측은 그러나 ''개혁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한 과감한 규제 완화에 나설 수도 있음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시사했다.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에 대해 그동안 일관되게 ''불가'' 입장이었던 정부가 중.장기 과제로 검토할 의사를 밝힌 것이 한 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날 정.재계 간담회가 열린 때와 같은 시간에 기자간담회를 갖고 출자총액제한의 예외인정 범위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한결 유연해진 자세를 보여 눈길을 끈다.

공정위는 "무분별한 계열 확장을 억제해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제도는 존속돼야 한다"면서도 △구조조정을 위한 출자금액의 예외인정시한 연장 △신규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의 예외 인정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예외인정요건 완화 등을 검토키로 약속했다.

◇ 남은 과제 =이날 간담회에서의 합의에 따라 정부와 재계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부문별 규제완화 과제를 검토할 태스크포스가 곧 출범할 전망이다.

태스크포스에서 각론 차원의 논의가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지가 관심사다.

이날 간담회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권오규 재정경제부 차관보가 "시장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한 규율이 필요하지만 경쟁력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에 대해서는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개별 규제완화 작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태스크포스가 몇 개 분야에 걸쳐 구성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출자제한 등 공정거래 관련 분야는 즉각 발족시키기로 했지만 그밖의 분야는 정부와 재계간 후속 논의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