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밀려드는 협찬금 청탁에 몸살을 앓는 것은 무엇보다 이들 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 보조가 줄어든 데다 불경기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협찬 요청을 거절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특히 내년의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이벤트를 기획하는 자차제들이 많아 기업들은 협찬 요청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이같은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관련 법률 제정을 추진중이나 관련 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 협찬 요청엔 불경기가 없다 ="각종 단체로부터 걸려오는 협찬금 청탁 전화를 거절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4대 그룹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불황인 데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각종 사회단체의 협찬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재의 경영 풍토상 어쩔 수 없이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의 실무부서 관계자도 "특정 단체에 협찬할 경우 유사한 단체들이 ''우리도 도와달라''며 손을 벌릴까봐 일단 거절하고 본다"고 털어놓았다.

A기업의 경우 결식아동 및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학술문화.사회단체 등에 낸 지정기부금이 지난 98년 29억원에서 99년 44억원, 지난해에 는 50억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다 정치후원금과 각종 협찬금 등을 합할 경우 부담액수는 더욱 늘어난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 왜 늘어나나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종익 규제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의 협찬금 부담액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정부에서 각종 단체에 보조하는 지원액수가 줄어들면서 이들 단체가 직접 기업에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지자체들이 선심성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후원 요청이 늘어나는 중요한 배경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전경련이 지난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법정 준조세 비중도 98년 0.66%에서 99년 0.74%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는 "경기회복기인 지난 99년 기업체들이 협찬금 지원액수를 늘리다보니 불경기인 작년 하반기 이후에도 지원 요청이 줄어들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해결 방안은 없나 =재계는 협찬금뿐만 아니라 준조세 성격으로 기업들이 내는 부담금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에 관련 법률의 정비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지난해 전경련으로부터 준조세 개선 건의를 받은 행정자치부는 지난 3월초 ''기부금품 모집규제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은 일정 기부금을 모금할 때 관계 행정기관의 추천서를 의무화하고 문화진흥기금의 용도를 제한, 지역축제행사 등에 들어가는 경비 지원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학술문화 및 시민단체들은 "고유한 문화학술 진흥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며 법안 제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또 ''부담금관리기본법''의 제정을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중이며 상반기중 법률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재계는 "선진국의 경우 기업과 경제단체가 자발적으로 기업문화 진흥에 적합한 시민단체 등에 기부하는 관행이 정착돼 있으나 우리나라는 반강제적인 협찬금 부담이 아직 많다"며 "관련 법률의 신속한 제정과 함께 협찬금을 지원받는 단체의 투명한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