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옛 현대전자)가 LG에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사업 매각을 타진한 것은 주력인 반도체 외에 돈되는 것은 모두 팔아서 빚을 줄인다는 자구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지난 98년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넘겨줘야 했던 LG로서는 LCD 부문에서 3년만에 ''역(逆) 빅딜''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현대와 LG간의 반도체 빅딜을 막후에서 주도했던 현 정부로선 반도체 빅딜이 사실상 실패하고 TFT-LCD 역빅딜이 추진될 경우 스타일이 구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정도로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돼 버린 상황이어서 채권은행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내심 이를 반기고 있는 까닭에 TFT-LCD 역빅딜은 강한 외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이닉스는 지난번 반도체 빅딜 때 LG반도체를 인수한 뒤 아직 다 갚지 못하고 있는 대금 6천억원을 이번 매각을 통해 갚을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측은 하이닉스의 제안에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차피 하이닉스로부터 6천억원의 반도체 매각 잔여대금을 쉽게(?) 받아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돈 대신 현물을 받을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예상되는 난관은 두가지.

첫째는 경기도 이천의 TFT-LCD 공장 값을 얼마로 평가하느냐는 것.

하이닉스측은 1조원 이상이라고 하지만 LG측 계산과 쉽게 맞아떨어질지는 의문이다.

하이닉스로선 LG에 진 빚을 털고 은행빚도 상당액 갚을 수 있는 카드로 TFT-LCD를 내놓았지만 문제는 시장에서 값을 얼마로 쳐주느냐다.

둘째는 LG의 해외합작 파트너인 필립스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인데 현재로선 미지수다.

◇ ''역빅딜''의 시너지는 =업계에선 일정부분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LG필립스LCD와 하이닉스의 주력 제품군이 서로 달라 시장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노트북용 LCD 14.1인치와 모니터용 LCD 17인치는 LG필립스LCD의 취약한 제품군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LG측 관계자는 "적어도 올 3.4분기까지는 LCD 시장의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신규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삼성에 버금가는 시장점유율을 구현함으로써 ''규모의 경제'' 면에서 일본 및 대만 업체를 압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년말 기준으로 LG필립스LCD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4.7%로 1위 삼성전자(20.1%)와 다소 격차가 벌어져 있지만 하이닉스의 사업을 합병할 경우 점유율은 17.5%로 치솟게 된다.

◇ 필립스의 태도가 변수 =그러나 공동 경영자인 필립스가 하이닉스의 제의를 받아들일지는 다소 유동적이다.

필립스측은 특히 증설을 추진하고 있는 구미 공장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하이닉스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작년 하반기 이후 세계 TFT-LCD 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이닉스의 작년 LCD 부문 매출이 4천6백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사업 규모가 줄어든 점도 부담이다.

최근 TFT-LCD 시장은 대만 업체들의 파상적인 진입에 따른 공급 과잉과 PC경기 침체로 인한 가격 하락으로 선두 업체들인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립스가 공격적인 인수전략을 구사할지 의문이고 매입에 나선다 하더라도 ''제값''을 지급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조일훈.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