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2급).

나라의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자리다.

정부 각 부처의 업무 내용과 행정 절차 등에, 시쳇말로 빠삭하지 않고는 감당하기 힘든 자리다.

예산처에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들 중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베테랑만이 맡을수 있는 중책이다.

기획예산처는 이런 자리를 개방형 임용대상으로 지정하고 지난해 9월 공개모집을 실시했다.

공모 결과는 실로 "코미디" 그 자체였다.

지원자는 현직 농협지점장과 지방대학 시간강사 단 2명에 불과했다.

예산 과정은 물론이고 비슷한 경험조차 전무한 이들 지원자에게는 당연히 ''함량미달''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예산처는 이에따라 내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물색했다.

당시 경제예산심의관이던 임상규 국장은 이렇게 해서 ''개방직'' 예산총괄심의관 자리에 앉게 됐다.

임 심의관은 "국가예산을 편성하는 작업은 정부 각 부처를 일사불란하게 이끌 수 있어야 가능하다"며 "그런 일을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민간인에게 맡기면 큰 혼란이 일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가 개방직으로 내놓은 인사국장(2급) 공모도 결말이 비슷했다.

지난 2월에 실시된 공개모집 역시 지방의 복덕방 주인과 중소기업 인사과장 출신 등 3명이 지원했다.

행자부 인사국장은 행정 각 부처의 공무원 인사를 챙기는 자리.

역시 오랜 세월의 공무원 생활을 거친자 만이 수행할 수 있는 까다로운 직책이다.

결국 이성열 당시 전북 행정부지사가 행자부측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자리를 옮겨 왔다.

대부분의 개방직 공무원 자리가 이런 식의 과정을 거쳐 기존 공무원들에게로 되돌아왔다.

개방직 공무원제도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했다는 비난이 쏟아진건 당연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우선 개방직 공무원제도의 탄생부터가 졸속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개방직 제도는 외환위기 이후 경직된 공무원 사회에 새 피를 수혈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조차 생략한채 쫓기듯 시행됐다.

이성열 국장은 "각 부처별로 고위직 20%씩을 일률적으로 민간에 개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었다"며 "그러다보니 문제점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개방형 직위의 ''쿼터''를 미리 정해 놓고 억지로 자리를 내놓으라고 다그치다보니 형편없는 ''한직''을 내놓거나 반대로 ''핵심'' 직책을 내놓는 양극단의 일이 벌어졌다.

결국 민간에 개방된 1백31개 직위중 92개 자리의 임용이 끝난 현재 민간인 출신은 단 1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마저도 대부분이 군인 세무서장 등 공무원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순수 민간인''은 5.4%인 5명에 불과하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