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LA사무소에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조셉 박이 존 그리샴의 신작 소설을 사려고 아마존닷컴에 접속한 때는 24세였던 1996년 말이었다.

책을 찾아 ''구입'' 난을 클릭하기 직전 눈에 들어온게 있었다.

배달하는데 며칠 걸릴 수 있고 운송비는 별도라는 옵션.

조셉은 인터넷 구입을 포기하고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그의 머리에 스친 것은 한국의 자장면 배달.번득이는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곧바로 연봉 10만달러의 직장을 박차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세 살 때 이민 온 한인2세인 그는 뉴욕대학에서 저널리즘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친구와 함께 그리니치빌리지의 조그만 창고에서 밤낮으로 작업한 끝에 1997년 7월 코즈모닷컴(Kozmo.com)이란 온라인 배달 업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1시간 안에 무료로 배달''해 준다는게 사업 모델이었다.

피자가게처럼 동네를 대상으로 한 배달과 UPS나 페덱스 같은 전국적인 배달회사들의 장점만 살려 어느 곳이든지 즉각 배달하는 시스템이었다.

번잡한 뉴욕 시내에서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신속하게 무료로 배달해 주는 코즈모닷컴에 대한 입소문은 빨랐다.

인기는 폭발했고 배달 품목도 DVD 비디오게임 CD 책 잡지 등에서 기저귀를 비롯한 일반 생활용품으로까지 확대했다.

조셉도 이를 악물고 일했다.

"거의 매일 창고에서 생활하면서 낮에는 투자유치하러 다니고 밤에는 직접 배달에 나서는 등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사업은 날로 확장되었다.

뉴욕은 물론 LA 시애틀 등 주요 11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회원도 30만명으로 늘어났다.

1년 만에 아마존닷컴(6천만달러) 소프트뱅크(3천만달러) 등에서 무려 2억5천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코즈모닷컴의 성공을 보도하는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거액의 자금유치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지 못하자 내부적으로 경영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난해 상반기 나스닥의 거품이 꺼지면서 상장이 지연되는 등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았다.

막대한 투자와 배달코스트 증가로 1999년 2천6백만달러의 적자를 낸 조셉은 창업 3년 만인 지난해 6월 3천3백명의 직원중 10%를 해고했다.

그러나 ''경영''을 잘 몰랐던 조셉은 이 과정에서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었고 7월 CEO에서 이사회 회장으로 물러났다.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었다.

조셉이 떠난 코즈모닷컴은 빠르게 무너졌다.

나스닥상장은 물건너갔고 스타벅스와 합의했던 1억5천만달러 규모의 투자유치 계획도 무산됐다.

파산만은 막겠다는 노력으로 오프라인 쪽의 경쟁업체였던 PD퀵사와 합병을 추진했다.

그러나 PD퀵은 이를 거절했다.

오는 26일 저녁 맨해튼 링컨센터 월터리드극장에서는 한인 감독 진원석씨가 만든 ''이-드림(E-Dream)''이란 영화의 시사회가 열린다.

조셉 박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영화다.

시사회를 2주일 앞둔 지난주 코즈모닷컴은 그동안의 세월이 정말 꿈이었던 것처럼 청산을 결정했다.

''오프라인에 토대를 두는 게 중요하다'' ''이익창출이 우선이다'' ''CEO는 경영을 알아야 한다''는 등의 뼈저린 교훈만 남긴 채…….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