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프랑스 주요 기업들의 영어 공용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해외 시장 매출액이 국내 사업을 초과하는 대기업의 경우 자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사내 공식어로 채택하고 있다.

교통 및 에너지 장비 분야의 세계적 리더 업체인 알스톰은 이미 지난 98년부터 아예 영어로 업무를 본다.

알카텔 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세르주 취뤽 회장이 주재하는 주간 간부 회의와 사내 지시사항까지 모두 영어로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세계화 바람을 타고 지난 몇년간 프랑스 기업들의 외국기업 인수합병(M&A)이 붐을 이루면서 세계 공용어로 자리잡은 영어의 사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외국인 파트너들과 대화하자면 영어가 필수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셰익스피어의 모국어가 프랑스 비즈니스 언어로 자리 잡은 것.

현재 세계 37개국에 진출, 전체 매출액의 80%를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젬플뤼스의 경우 전직원 8천명이 영어만 사용한다.

옆 사무실의 자국인 동료와 대화할 때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영어로 해야 한다.

사내 e메일은 물론 모든 서류도 영어로 작성한다.

본사의 업무 상황을 번역없이 신속히 지구 건너편 지사의 외국인 직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지난 4년간 미국과 브라질 이탈리아 등 여러 외국업체를 인수한 알카텔 그룹은 전체 13만명 직원중 프랑스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그룹 전체 매출액의 85%도 해외법인이 벌어들인다.

영어 업무가 전략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인 셈이다.

99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담배회사 세이타와 타바카레라가 합병을 통해 새로 설립한 알타티스의 공용어도 영어다.

불어 스페인어 둘 다 유엔(UN) 공식언어지만 영어를 택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선 자국어 우선 싸움이나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마니아 다시아와 일본 닛산, 한국 삼성자동차를 차례로 인수한 르노자동차에서도 영어가 필수다.

입사 지원을 하려면 토익 성적이 최소한 7백50점은 돼야 한다.

국제업무를 원만하게 처리하자면 이 정도 영어 실력은 돼야 한다는 게 르노자동차측의 설명이다.

최근 프랑스 기업들의 영어 가속화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본사를 중심으로 국가와 지역별로 구성됐던 과거의 기업 상하구조가 이젠 사업 분야별(Business Unit) 수평구조로 재조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프로젝트 담당자의 직속 상사는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적이 다른 지구 반대편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 기업의 사내 영어화가 현재로서는 신입사원과 중간 관리자 이상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전 직원에게 확대될 전망이다.

영어 공식화를 발표한 기업들은 직원 어학 훈련에 대한 투자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70년대에 입사한 "영어 열등생" 직원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내 연수를 실시하는 기업도 있다.

건자재 전문 업체 시망 프랑스의 경우 종업원 40%가 사내 영어 학습을 받고 있다.

심지어 르노자동차도 직원들의 프랑글래(불어식 영어)를 교정하기 위해 영어 연수 시간을 지난해 16만시간에서 올해 40만시간으로 2배반이나 늘렸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50%나 많은 총 60만시간으로 늘려 영어교육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hyeku@worldonlin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