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11시 서울 명동에 있는 A대금(貸金)업체 사무실.

대학 2학년생인 윤모(22)씨가 들어섰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2백만원이 급히 필요해졌기 때문.

1천3백만원짜리 전세집에서 살고 있는 윤씨는 이달초 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으로 2백만원을 더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시한은 이달말까지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윤씨는 담보없이 신분증 하나만으로 급전을 빌려준다는 유사금융 업체를 찾은 것이다.

금리는 월 7%로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매달 40만원을 벌고 있는 윤씨는 6개월만 일하면 돈을 갚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2백만원을 빌렸다.

대학생 윤씨가 연 80%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의 덫"에 걸린 순간이었다.

◇ 급전시장 팽창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화된 경기 침체를 꼽을 수 있다.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실업자 증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실업자 1백만명 시대에 재돌입하면서 일반 서민들의 급전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대출받아 투자한 주식에서 손실을 본 사람들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나 카드대출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사채시장 등에서 살인적인 고금리를 감수하고 급전을 끌어다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올초부터 원룸 등 소형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전세보증금이 크게 오른 점도 급전수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형주택에 사는 계층은 사회초년생이거나 대학생인 경우가 많다.

신용도가 낮은 이들은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가 어렵다.

경마 경륜 카지노 등 이른바 사행산업 급팽창에 따른 수요도 만만치 않다.

올해 국내 사행산업의 시장규모는 7조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서민피해 심각하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의 경우 연금리가 24%를 넘는다.

유사금융사들의 대출이자율은 최고 연 1백%를 넘는 경우도 많다.

"급전대출 업체들이 살인적인 고금리를 붙여 가계파산을 부채질하고 있다"는게 참여연대 관계자의 지적이다.

급전 이용자가 늘면서 신용불량자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석달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수는 올 2월 말 현재 2백42만명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이 신용불량정보 관리기준을 완화해 올 1월 크게 줄었던 신용불량자 수가 2월들어서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개인파산자도 증가추세다.

지난해 12월 3명에 불과한 개인파산자는 이달 현재 25명에 달하고 있다.

채권회수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사채 고리대금업자들은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해 이른바 ''해결사''로 구성된 ''진상조사반''을 동원, 이중고를 호소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채무자의 가족 친지들까지도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대안은 없나 =시민단체들은 최근들어 대출이자의 최대 한도를 제한하는 이자제한법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하금융을 양성화하는 방안으로 이른바 대금업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근본처방과 함께 은행을 비롯한 제도금융권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 대출을 받으려면 소득 대출현황 등 20여가지의 서류가 필요한 데다 개인에게는 그마나도 어려워 사채시장이나 유사금융사로 서민들이 몰리고 있다"는게 시민단체측의 주장이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