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을 지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나라의 산업환경과 기업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급기야 97년의 IMF경제위기를 지나면서 대마불사라고 여겨지던 일부 재벌그룹 조차 하나 둘씩 쓰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70~80년대 성장의 길을 달려왔던 기업들이 이처럼 급격히 경쟁력을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 기업의 경쟁력은 사업부 수준의 경쟁력(business-level competitiveness)과 기업 수준의 경쟁력(corporate-level competitiveness)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사업부 수준의 경쟁력은 그 사업부가 속해있는 사업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매력적인가,그 사업에서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기업수준의 경쟁력은 각 사업에서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그리고 사업부간 자원공유나 능력이전을 원활히 조정하는 능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의해서 분석될 수 있다.

<>한국기업의 과거 경쟁력=사업부 수준의 경쟁력을 먼저보자.과거 한국경제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수요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공급은 극히 제한된 극심한 수요초과상태로 구조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70년대의 가전산업이 그렇다.

엄청난 수요에 비해 공급은 지극히 제한되어 냉장고와 같은 특정 가전제품의 구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주문후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는 비단 가전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류산업,제당산업,정유산업,비료산업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과제는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만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모든 산업이 구조적으로 매력적인 상황에서는 각 사업에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기업간 우열의 관건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마케팅,브랜드 네임과 같은 특정 산업에만 쓰일 수 있는 산업고유의 자원과 능력은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다.

기술의 경우를 보면 당시 우리 기업에 요구되던 기술의 수준은 최첨단이 아닌 범용기술로서 이는 시장에서 라이센싱을 통해 구입 가능한 것이었다.

마케팅의 경우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자금시장이나 노동시장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고 정부가 경제에 깊이 간여하던 당시에 핵심적인 것은 자금,관리력,정부보조 등과 같은 어느 사업에나 널리 쓰일 수 있는 일반적이고 유연한 (general and flexible) 자원 및 능력이었다.

따라서 과거 한국기업의 사업부 경쟁력은 전적으로 누가 이러한 일반적이고 유연한 자원 및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업 수준의 과거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당시 각 사업에서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이 정부보조,자금력,관리력과 같은 일반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기업이 어떤 사업군을 영위하더라도 그 사업들에 요구되는 핵심적 자원 및 능력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한국 기업의 다각화는 모두 관련다각화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핵심적인 자금,관리자를 사업부간 공유하고 이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조정방법은 중앙집권적 조직체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비서실,기획조정실 등의 강력한 스태프 조직을 통해 중앙 집권적 조직체계를 갖추어 내부자금시장 및 내부노동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상당한 조정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90년대 이후의 경쟁력=사업부 수준의 경쟁력이 달라졌다.

90년대에 접어들어 높은 수요초과와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강력한 정부통제,비효율적인 자금 및 노동시장이 지배하던 제도적 상황이 급격한 변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정부규제에 의한 진입장벽이 제거되면서 신규 진입자에 의한 공급이 늘어나고 시장개방을 통해 해외로부터의 공급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산업이 수요초과에서 공급과잉 상태로 전환되어 각 산업의 구조적 매력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수요초과가 공급과잉으로 변해가면서 누가 많이 생산하느냐의 양의 게임은 누가 보다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느냐의 질의 게임으로 변해갔다.

이전에는 경시되었던 마케팅 능력,브랜드 네임,애프터 서비스 등이 핵심적인 자원과 능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기술면에서도 최첨단, 고난도의 기술이 기업 경쟁우위 원천의 하나가 되었다.

이전에 핵심적인 것으로 인정되던 일반적인 자원과 능력이 정부개입 축소,규제철폐,자금시장개방,부분적인 노동시장의 형성 등으로 인해 그 중요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기업수준의 경쟁력도 달라지고 있다.

각 사업에서 요구되는 핵심적 자원과 능력이 일반적인 것에서 기술,마케팅과 같은 산업 고유의 것으로 바뀜에 따라 한국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 중 상당수가 새로이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면에서 관련성이 없는 비관련 사업으로 변모하였다.

따라서 사업간의 잠재적 시너지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핵심적이던 자금 및 관리자를 내부자금 및 노동시장의 형성을 통해 효율적으로 조정하던 중앙집권적 구조는 여러 산업에서 새로이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을 조정하는 기구로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새로이 요구되는 자원과 능력을 사업부간 공유및 이전을 조정하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많은 한국기업은 사업부 및 기업수준 모두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

박철순 < 서울대 경영대 교수 cpark@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