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 이노디자인 대표 >

오는 10월에는 전세계 산업디자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2001 세계산업디자인대회"가 서울과 성남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행사의 비중으로 보아 이제 한국 디자인계의 역량이 국제 사회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정부의 투자와 디자인계의 노력이 결집돼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산업계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변화와 지속적인 투자가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숨가쁜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의 전반적인 디자인 수준을 국제적인 기준에서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아직도 선진 대열에 들 수 없는 면모가 여러 곳 남아 있다.

독자적인 기술과 디자인으로 세계 일류상품을 만든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대부분은 선진국이 개발한 제품의 모방품이나 아류 제품의 생산에 그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자칫 잘못하면 디자인은 이제 기업이나 국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디자인 부문에 결코 적지 않은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처방을 내릴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한 일이다.

한국 기업의 이러한 디자인 실패는 과연 어떤 이유에서 기인되는지 필자가 국내외 기업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업 디자인 경영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1. 제품개발 단계에서 디자인의 시작이 너무 늦다 =건물을 지을 때 골조 따로 외장 따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경우는 없다.

경제성과 공학적인 문제와 미적인 측면 등을 동시에 고려함으로써 건축물이 해결해야 할 제반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왜 제품을 개발할 때는 디자이너의 참여를 늦추는가.

상품 기획안이나 마케팅 계획이 확정되어야만 디자이너를 찾는 것은 이미 한 발 늦은 일이다.

대박을 터뜨리고 싶다면 기획 단계부터 디자이너를 포함시켜야 한다.

2. 현재의 유행만을 따른다 =지금 개발되는 제품이 시장에서 팔리려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디자인은 미래를 기준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 유행하는 것만을 좇다가는 당장 내일 사양길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잘해야 아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다.

명심하자.

디자인은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3. 최고경영인이 디자인 전략 수립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요즘 웬만한 기업의 직원들은 최고경영인이 디자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자랑한다.

그런 경영인일수록 유행처럼 디자인의 중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고경영인이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것"과 디자인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길을 막고 물어 보라.

디자인에 관심없는 경영자가 어디 있는가.

결코 관심으로만 될 일이 아니다.

디자인은 경영자가 직접 챙겨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4. 디자이너가 상품기획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지시가 없으면 스스로 일을 풀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많다.

자신이 없다.

그럴수록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틈을 찾거나 아예 무책임해지기도 한다.

단순히 기획서 내용대로 그림을 그려내는 디자이너는 그 존재 가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디자이너가 독창적으로 차별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로부터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시키는 일만 꼬박꼬박 하는 디자이너보다는 안목을 가진 디자이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5. 너무 많은 다양한 기능을 신제품에 쏟아 넣는다 =이미 이 세상엔 없는 물건은 없다.

달에도 갔다 올 수 있는 세상이다.

기업의 관심은 단순히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팔리는 물건"이다.

잘 팔리는 물건은 꼭 다양한 기능을 많이 모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고객이 무엇을 아쉬워하고 있는가이다.

6. 기술자가 디자인을 관리한다 =디자이너가 엑셀이면 기술자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면 차는 안전할지 모르나 결코 앞으로 달려나갈 수 없다.

7. 디자인은 브랜드라는 의식이 부족하다 =디자인에 투자한다는 것은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것이다.

잘 디자인된 제품만큼 기업의 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제품을 잘 팔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잘 팔리는 제품은 기업의 브랜드 파워를 확실하게 높여줄 수 있다.

8. 디자인보다는 광고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근본적으로 제품이 훌륭하면 판매가 수월할 수 밖에 없다.

제품을 훌륭하게 만드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 이후 단계인 광고에 목을 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광고만으로는 결코 제품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한다.

밀어내는데 효력이 있을 뿐이다.

9. 디자인 개발 속도가 느리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하는 시장에 미리 대응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낙오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기업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톱 클래스의 정보와 지혜의 축적을 등한히 하고 또 개발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에도 약하다.

디자이너에게만 모든 것을 떠넘긴다.

개발기간이 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이 디자인 개발을 위한 역량의 축적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10. 세계 시장의 소비자 취향에 민감하지 못하다 =기껏해야 국내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고 웬만큼 규모를 갖춘 회사도 최고경영인의 안목이 디자인을 좌우한다.

디자이너에게 세계를 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무실이 아니라 시장에서 문제와 해답을 동시에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ceo@designato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