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에서 시장 기반을 굳히고 난 기업들이 갖는 다음 목표는 십중 팔구 해외 무대다.

수많은 잠재 고객이 기다리는 세계 시장에서 외국 기업과의 승부에 성공하면 더 큰 수확과 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기란 쉽지 않다.

자국에서 탄탄한 소비자 신뢰와 판로를 구축해 놓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외국 시장은 기득권이 먹혀 들어가지 않아서다.

올해로 창업 71주년을 맞는 일본 굴지의 제약회사 후지사와약품의 경험은 어떻게 해야 해외시장 개척에서 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 제약업계에서 가장 빠른 지난 77년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라이선스와 원료의약품 수출만으로는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년 이상 내다보고 미국에 진출했다.

첫 사업으로 81년 스미스 클라인과 합작법인 "FSK"를 세우고 일본에서 가져온 원료를 제품화해 판매했다.

하지만 취급 품목이 한가지 뿐이었던 이 회사는 곧 적자 수렁에 빠지면서 골칫거리로 변했다.

시장에 내놓을 물건이 더 없는 상태에서 직원과 조직을 늘릴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존 회사를 꾸려 나가는 것도 벅찼다.

후지사와는 타개책으로 미국 회사를 하나 사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특허 기간이 지나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약품을 전문으로 만들어내는 "라이포메드"라는 기업이었다.

85년 22.5%의 지분을 인수한 후 89년 약 7백억엔을 들여 1백%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다.

후지사와는 품목다각화를 꿈꾸며 라이포메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라이포메드는 인수되기 전 미 FDA(식품의약국)에 제출한 의약품 제조 관련 서류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것이 들통났다.

라이포메드와 FSK를 통합해 설립된 회사 후지사와USA는 출범 직후부터 판매중지와 의약품허가 신청취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후지사와는 라이포메드에 자본 참여를 시작한 85년부터 경영에는 간여하지 않은 채 인력도 파견해 놓지 않았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기업매수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도 잘 되려니 믿고 인재를 투입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실패를 부른 것이다.

미국 투자의 거듭된 실패는 일본 본사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후지사와USA가 지난 92년 7천2백만달러의 적자를 냄에 따라 후지사와는 93년 연결결산에서 창립 후 최초의 적자로 전락했다.

후지사와는 전략에 큰 미스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응급수술에 착수했다.

연구소 공장 본사 등에서 선발한 30여명의 정예부대를 미국에 급파해 시장을 정밀 조사하는 한편 현지 운영체제를 뜯어 고쳤다.

그리고 특허기간이 지난 약품사업을 더 이상 하는 것은 손실만 부풀릴 뿐이라고 판단, 98년 이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 회사는 미국시장 판매전략을 틈새상품 중심으로 전환했다.

대형 미국 제약업체들과 직접 경쟁에서 부딪치지 않으면서 실리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후지사와는 판매인력이 크게 필요치 않은 면역억제제로 제품을 특화해 의료진들로부터 신뢰와 명성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아토피성 피부염치료제를 후속제품으로 내놓고 계속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후지사와USA 재건에 투입됐던 아오키 하츠오 후지사와약품 현 사장은 "미국사업 실패 원인은 제품력 부족과 돈만 대고 인력을 파견하지 않은 방심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위험이 큰 해외 시장에서 제품력과 인재야말로 시장개척의 필수 무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거금을 까먹었지만 수익성 낮은 해외 사업을 과감히 포기한 이 회사의 결단은 경영호전으로 보상받았다.

98년 15억엔의 적자를 냈지만 2001년 3월 결산에서는 약 2백억엔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1천엔 안팎에 머물던 주가는 최근 2천8백엔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