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였던 서울 동아상호신용금고가 지난해 12월 급작스레 영업정지되자 금고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정현준(동방금고).진승현(열린금고)사건의 파장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금고업계 모범생으로 알려졌던 대형 회사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채업자로 출발한 김동원 회장(64)은 지난 81년 동아금고를 설립해 업계 3위로 키웠다.

동아금고는 지난해 6월말 결산때 금고업계 최대인 90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뒤늦은 주식투자 욕심이 20년 공적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다.

금감원의 실사결과 동아금고의 자산부족액은 2천6백억원에 달했다.

김 회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식투자손실을 메우려고 집중적으로 끌어쓴 금고돈 2천5백88억원이 대부분 부실화됐다는 얘기다.

대주주 오판의 댓가로 예금보험공사는 동아금고의 예금 5천7백억원을 공적자금으로 대신 물어줘야 하고 1백14명의 직원들은 실업자로 나앉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검찰고발 직전에 해외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은 "은행이 주인이 없어 망했다면 2금융권은 주인의 탐욕 탓에 망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은행의 책임경영 부재와 2금융권의 대주주 전횡을 꼬집은 얘기다.

종금사의 무더기 퇴출은 거의 "대주주의 빼먹기"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한종금을 인수한 거평그룹은 무려 1조원을 빼갔다.

나라종금도 예보의 부실원인 조사에서 대주주인 김호준씨(보성인터내셔날)가 4천4백80억원의 손실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생명은 부실계열사인 삼성자동차에 여신한도까지 어겨가며 고객돈으로 5천4백억원을 대출해줬다.

또 삼성에버랜드 삼성중공업 등 계열사의 기업어음을 비싸게 사주거나 임차보증금을 과다지급해 공정위로부터 70억8천7백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봉주 경희대 교수는 "대주주의 천민 자본주의적 행태 때문에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대주주의 사금고화를 막으려면 철저한 정부의 금융감독과 종업원 주주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감시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은행의 부실은 주인도 없고 책임경영도 없는 데서 비롯됐다.

주인이 없다보니 경영진이 주인행세를 하는 "대리인 비용"을 낳았다.

경영진은 정치권이나 정부에 줄을 대 자리를 보장받는 대신 부당한 대출청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에 주인이 있어야만 책임경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은행의 책임경영을 방해하는 것이 관치금융이라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정부는 그동안 시장안정이란 명분아래 협조융자,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회사채신속인수 등 은행 "동원령"을 수시로 발동해왔다.

정부가 대주주인 한빛은행은 제일은행이 담당했던 대우계열 3개사의 워크아웃 작업을 반강제로 떠맡으면서 반대 목소리 한번 못냈다.

IMF이후 퇴출위기에 몰린 금융기관에 대거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과 17개 은행중 한빛 조흥 서울 평화 광주 경남 제주은행 등 7곳이 국영은행이 됐다.

대한생명 대우증권 한국투신 대한투신 등 2금융권도 대거 국유화됐다.

진념 경제부총리는 최근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조기민영화 방침을 밝혔다.

공적자금 회수과정에서 산업자본(재벌)의 은행소유 허용여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많다.

현실적으로 해외매각이 아니면 국내에선 삼성 등 극소수 재벌만 은행지분 인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박사는 "은행의 주인찾기 보다는 경영진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으면 국내 은행들도 주주친화적인 책임경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 은행권 인사는 "겉돌고 있는 사외이사,감사위원회,리스크관리 등 있는 제도들만 제대로 운영해도 은행의 부실화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