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간의 전략적 제휴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

"광역화"와 "강자간의 결합"이 키워드다.

자동차 전자 철강 항공 등의 분야에서 일기 시작한 "신(新) 전략 제휴" 물결은 거의 전 업종으로 빠르게 확산돼 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IBM 제너럴모터스(GM) 다임러크라이슬러 소니 도요타 NEC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각 업종의 세계 간판 기업들이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이들 기업들이 일궈내고 있는 전략 제휴의 공통점은 강자-강자간 결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시장이 빠른 속도로 통합화되는 추세에 따라 "강한 기업"들간에 소모적인 경쟁을 피하고 시장을 사이좋게 나눠 갖자는게 밑그림이다.

그 결과는 냉정한 "정글 법칙"으로 귀결된다.

제휴선에서 제외된 약자는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도태되거나 강자의 M&A(인수합병)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일류 기업간 전략적 제휴는 "과점체제"를 세계적으로 승인받는 동시에 관련 기업들은 중세 유럽 봉건시대의 제후들처럼 일정 지역이나 품목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애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맥킨지 컨설팅이 1980년 이후 출범한 전세계 기업들의 제휴 사례를 분석한 결과 90% 이상이 미국-일본-유럽으로 연결되는 "강자 동맹"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확대하면서 강자간의 전략적 제휴는 더이상 "선택"이 아닌, "성공 경영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향후 세계 경제의 과점화가 심화되면서 기업간 전략 제휴의 광역화와 거대화가 한층 더 촉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상일 수석연구원은 "전략적 제휴의 확산은 경쟁이나 협력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며 "현재 개별 다국적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시장은 조만간 거대 동맹군에 의해 다시 재편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빅6 체제"(GM 포드 다임러 폴크스바겐 도요타 르노)의 완성으로 경쟁구도가 일단락됐다는 세계 자동차업계는 최근 "GM의 다임러크라이슬러 인수설"이 불거지면서 다시 긴장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 설이 현실화될 경우 이미 다임러와 포괄적 제휴를 맺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GM-다임러간 거대 동맹에 자동 편입될 수 밖에 없다.

철강업계에도 거대 동맹이 꿈틀대고 있다.

세계 철강업계의 1~3위 기업인 포항제철 신일본제철 유지노 등 3사는 기술과 판매부문의 포괄적 제휴를 맺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과잉 경쟁에 따른 부담을 줄여보자는 차원보다는 자동차 중공업 등 막강한 구매력을 갖고 있는 철강 수요업체들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제휴가 성사된 LG전자와 마쓰시타의 사례도 전형적인 강자동맹이다.

에어컨 부문 세계 1,2위를 달리고 있는 LG와 마쓰시타는 생산 효율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과감하게 빗장을 열었다.

LG전자는 또 전자상거래 기반에 대한 기술표준(MPEG-21)을 획득하기 위해 인텔과의 연대가 불가피해졌다.

LG는 필립스와 디스플레이 브라운관에 이어 디지털TV 부문까지 제휴를 모색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우선주를 매각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가전부문에서 소니, 반도체 부문에서 인텔과 유지하고 있는 기존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어 전략적 제휴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 표준을 획득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소니와의 제휴를 모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7월 디지털 미디어 분야의 반도체 공동 개발 및 장기 공급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 반도체 빅딜로 한동안 서먹했던 감정을 씻어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에어프랑스 델타항공 아에로멕시코 등과 운항 전반에서 마치 한 회사처럼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하는 "스카이 팀"을 결성했다.

유나이티드 싱가포르 등으로 구성된 스타(Star), 영국항공 케세이패시픽 등으로 구성된 원 월드(One World), 그리고 노스웨스트 등의 윙스(Wings)가 주도해온 다국적 항공동맹 움직임에 일격을 가하며 한발 앞서 나간 것이다.

이처럼 기존 경쟁관계나 시장구도를 뛰어넘어 이뤄지고 있는 전략적 제휴는 국내시장에서도 거의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

경쟁관계에 있던 한솔제지와 신무림제지가 최근 전격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발표한데 이어 신호제지 한국제지 계성제지 등 중견 회사들도 "제품 교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화섬업계도 불황을 타파하기 위해 SK케미칼과 삼양사의 화섬 통합법인인 휴비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구조조정을 모색하고 있어 강력한 중심 동맹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결국 전략적 제휴는 이제 생존 문제를 뛰어넘어 우량 기업들의 "영원한 일류"를 보장하는 "불로초"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어쩌면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섭리인 "생로병사"와 "흥망성쇠"도 거대 동맹만은 비껴갈지도 모르겠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