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2일 오후 서울 강남의 메리어트 호텔.

벤처기업 여성CEO(최고경영자) 7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중엔 아데코코리아 최정아 사장, 휴먼아이브리지 윤정아 사장, 라르떼 송은선 사장 등이 눈에 띄었다.

이 모임은 신임 회장을 뽑기 위한 여성벤처기업협회 임시 총회.

임기만료로 물러난 정희자 회장의 후임으로 이영남 이지디지털사장을 선임한 이날 총회는 협회의 제2기 출범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난 98년7월 설립된 여성벤처협회는 현재 정회원사가 1백10여개사,준회원사는 5백여개사에 달한다.

중소.벤처업계에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벤처협회도 어엿한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이들은 미국 휴렛팩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과 같은 최고의 CEO가 되기 위해 오늘도 맹렬히 뛰고 있다.

◆ 벤처업계 우먼파워 =벤처업계는 상대적으로 남녀차별이 적은 곳이다.

나름의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승부를 걸 수 있는게 벤처인 까닭이다.

그래서 성공한 여성CEO도 많다.

지난해초 여성기업으론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해 주목받은 버추얼텍의 서지현(37) 사장.

그는 연세대 전산학과 졸업직후인 지난 91년 후배들과 PC 3대를 달랑 들고 창업했다.

9년 동안 회사를 키워 코스닥 시장에 올리면서 그는 일약 벤처갑부 반열에 올랐다.

작년말 현재 서 사장의 소유지분 평가액은 1백억원대에 달했다.

인트라넷 사업에 주력했던 그는 요즘 무선인터넷 솔루션 개발로 제2의 도약을 준비중이다.

송혜자(34) 우암닷컴 사장도 입지전적인 여성 벤처사장.

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그는 26세때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차렸다.

4평짜리 사무실에서 한명의 직원과 출발했지만 지금은 연매출 1백억원대에 도전하는 회사로 키웠다.

여성벤처협회 신임 회장인 이영남(44) 사장이 경영하는 이지디지털은 지난해 매출을 2백40억원이나 올렸다.

금년 목표는 3백50억원.

부산 동아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88년 당시 상장회사였던 광덕물산에서 분사한 전자사업부를 지금의 중견 벤처기업으로 키워낸 뚝심의 여성CEO로 통한다.

이영아(36) 컨텐츠코리아 사장은 여성 정보화의 기수라 할 만하다.

콘텐츠 기획사업으로 97년 창업한 이 사장은 ''21세기 여성정보화포럼''을 운영하며 이름을 날렸다.

최근엔 디지털 워터마킹 기술을 개발해 콘텐츠 보안 솔루션 분야로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이승주(34) 리닉스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 유학파인 그는 ''밥스''라는 스팀 진공청소기를 개발해 미국 유럽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올 3월 독일 쾰른 세계가전박람회에 참가하는 것을 계기로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 굴뚝을 지키는 여성 =전통 제조업 쪽에도 막강 여성사장들은 적지 않다.

아동가구 전문업체인 도도가구의 길준경(41) 사장은 서울대 미대와 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디자이너 출신.

그는 다양한 음악과 동물소리를 들려주는 멜로디 가구를 개발해 돌풍을 일으켰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국제특허를 받은 이 제품을 외국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길 사장은 요즘도 해외 전시회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자동차 클랙슨 제조업체인 성일산업 이문숙(53) 사장은 여성이 드문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분투하고 있는 여성 사장.

지난 93년 만도기계로부터 클랙슨 사업부문을 인수받아 경영해온 이 사장은 지난해 1백만달러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태양전자 이명례(56) 사장은 지난 80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조명기구로만 한 우물을 팠다.

조명업계에선 ''살아있는 역사''다.

20여년간 경남지역 여성기업인들의 맏언니 역할을 해온 이 사장은 "제조업을 주축으로 한 경남지역 여성기업들은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