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국내 기업들은 많은 경우 예년의 공격 경영, 또는 확장 경영은 꿈도 꾸지 못한채 그저 올 한해를 무사히 넘기면 좋겠다는 생각들인 듯하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주요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신년사가 수익중심 경영, 내실경영, 긴축경영, 견실경영, 현금창출, 유동성확보 등 방어적 수사들로 장식된 것에서도 감지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수익성이나 현금 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방법론에 있어서는 아직 많은 기업들이 분명한 좌표를 갖고 있지 못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같은 한국 기업들에 귀감이 될 만한 회사가 있다.

성숙기 내지는 사양기에 접어든 전형적 1차 산업에 디지털 경영기법을 접목시켜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업 부럽지 않게 고성장, 고이윤을 구가하고 있는 멕시코 시멘트 제조업체, 시멕스(Cemex,S.A.)다.

전세계 30개국에 2만1천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연간 6조3천억여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시멕스는 관련 업계에서 스위스의 홀더방크와 프랑스의 라파지에 이어 3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 기업들이 최우선시하고 있는 수익성, 성장성, 현금흐름 면에서는 세계 제일이다.

직원 1인당 순이익이 6천1백만원으로 업계 평균의 4배에 가깝다.

경상이익률은 37%로서 홀더방크나 라파지의 1.6배다.

연평균 매출액 신장률은 12%를 넘어 선두 두 기업보다 7%포인트나 높다.

현금흐름도 매출액의 31%로서 1,2위 기업들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멕스는 로젠조 잠브라노 현 회장 겸 최고경영자의 할아버지, 로렌조 잠브라노 1세에 의해 1906년 멕시코의 히달고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시작됐다.

올해 57세인 현 회장은 십대 시절 할아버지 공장에서 틈틈이 일하다가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196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업에 참여했다.

41세 때인 1985년, 즉 한참 멕시코가 개방될 당시 사장직에 취임한 그는 집중과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당시 정유사업 등 본업 이외에 투자했던 자금을 모두 거둬들여 시멘트 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지난 15년 사이 20개 기업을 인수했다.

이로써 85년 당시 시멘트 1천만t이던 생산능력이 오늘날 6천5백만t으로 늘었다.

한국 최대 시멘트 메이커인 쌍용양회의 4.3배 규모다.

현재 시멕스는 멕시코 베네수엘라 스페인 파나마 등에서는 관련 업계 1위 기업이고, 필리핀과 콜롬비아 인도네시아에서는 2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에서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의 한 벽촌 마을에서 시작된 시멕스가 이렇게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한 가장 큰 비결은 디지털 경영이다.

특히 90분 이상 트럭에 담아두지 못하고 최고 100km 거리까지밖에 배달할 수 없는 레미콘을 8천종이나 취급해야 하는 이 사업에서는 건축현장의 사정 변화와 교통체증, 기후변덕 등 온갖 다양한 변수로 주문취소가 유독 많다.

시멕스는 이 문제를 1987년 위성통신 시스템 도입과 1994년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동원한 전자동 최적배송시스템 도입으로 해결했다.

이로써 종래 3시간 이내 배달이 통념이던 업계 관행을 20분내 배달로 압축해 이를 98% 확률로 지키고 있다.

배달 막판에 주문 취소 사태가 발생해도 트럭기사는 군말 없이 다른 건축현장으로 달려간다.

고객들도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군말이 없다.

디지털 경영의 진수, 시멕스는 한국 기업들의 생존 활로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문위원.經營博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