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포항제철간의 ''냉연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14일 "포철이 독점적 사업자로서 철강업계에 군림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양측의 오랜 갈등이 비등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백3만t에 달했던 포철로부터의 자동차용 냉연강판 구입 물량을 올해는 그 절반도 안되는 49만5천t으로 삭감한다는 방침을 이미 포철 쪽에 통보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측이 ''냉연 고객''이라는 카드를 활용해 실력 행사에 들어가는 한편 최고경영자의 기자회견을 통해 포철을 공격할 정도로 양측의 ''감정의 골''은 깊다.

◆ 갈등의 뿌리 =지난 99년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강관이 연산 1백8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가동하면서 독점체제를 유지해 오던 포철과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포철은 "가뜩이나 포화 상태인 냉연의 공급과잉 현상을 더욱 부추길 뿐"이라며 냉연제품 원료인 핫코일(열연코일)의 공급을 거부하면서 현대를 압박했다.

국내 냉연 수요가 7백만t 남짓에 불과한 반면 공급 능력은 1천3백만t을 웃돌고 있으니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게 포철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현대는 "수출 등 해외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독점유지 논리"라고 맞섰다.

설령 국내 수급에 초점을 맞춘 포철측의 공급과잉 논리를 인정할 경우라도 그 귀책 사유의 상당 부분은 포철에 있다고 주장한다.

포철 역시 지난 97년 광양제철소에 연산 1백80만t짜리 냉연설비(4냉연)를 신설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설비 계약일 기준으로 따질 때는 포철(95년 5월)이 현대강관(95년 3월)보다 더 늦은 만큼 현대 쪽에 과잉투자의 책임을 돌리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되받는다.

포철은 이에 대해 "광양 4냉연을 회사 내부적인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업계 전체가 참여하는 포괄적 구조조정론으로 재반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냉연설비가 노후화된 연합철강과 최신 설비를 보유한 현대강관이 합쳐져야 한다는 ''빅딜'' 논의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는 이에 대해 물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철의 노후 설비는 폐기하면 되며 각 업체별로 설비 특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특화제품을 생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맞받아친다.

◆ 일본업계에까지 번지는 파장 =포철측에서 계속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자 현대강관은 일본의 가와사키제철로부터 핫코일을 들여오기로 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으로 정면 대응했다.

또 40% 가량의 지분을 가와사키와 일본 종합상사들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에 넘기기로 하는 등 안정적인 핫코일 조달을 위한 ''자구(自救)''에 나섰다.

이 대목에서 양측의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가와사키 컨소시엄 참여를 거부, 현대강관의 지분 40% 매각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현대측은 "포철이 일본 회사들에 훼방 공작을 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공공연히 토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포철은 지난달 가와사키 등 일본 철강업체들이 국내에 핫코일을 덤핑 공급하고 있다며 일본측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고 가와사키는 ''공급가 인상 추진''으로 한발 물러섰다.

저렴한 강판 수입을 기대했던 현대측은 "포철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 해법은 없나 =현대측(강관)은 지난주에만 무려 세차례에 걸쳐 보도자료 등을 내놓으며 포철을 비난하는 등 포철과의 ''전면전''을 작심한 양상이다.

"포철이 핫코일을 동남아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면서 현대에는 필요 물량을 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포철은 이에 대해 "연간 핫코일 판매량 9백만t 가운데 동남아 수출물량은 25만t 선에 불과하며 이는 만약의 경우를 위한 바이어 관리 차원일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확전을 원치 않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갈 데까지 간 두 회사간의 갈등을 자체적인 조율로 봉합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졌으며 보다 포괄적인 해법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