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일본 복사기 메이커인 후지제록스는 한국내 합작사인 코리아제록스의 한국측 지분 50%를 인수했다.

당시는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여서 복사기 판매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정도로 경영환경이 나빴을 때였다.

후지제록스가 당장 적자볼게 뻔한 기업을 완전 인수한 것은 한국 시장의 성장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을 수출 생산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까지 있었다.

74년부터 한국에서 합작사업을 벌여온 만큼 독자적인 경영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한국후지제록스의 다카스키 노부야 회장은 "올해 수출 규모가 5백50억원 규모로 98년에 비해 70% 가량 증가하는 등 안정적인 흑자기조를 갖췄다"고 말했다.

후지제록스의 사례처럼 외국 제조업체가 한국투자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시장 잠재력이 큰데다 수출 기지로 육성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자산가치가 떨어져 싸게 기업을 살 수 있게 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최봉 수석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기업들의 진출이 늘어난 것은 글로벌 생산거점을 확보한 후 내수 시장을 공략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98년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세계적인 제지업체인 아비티비와 노르스케스코그가 한솔과 합작형태로 국내 최대 신문용지 공장인 한솔제지 전주공장을 인수했다.

보워터도 한라펄프제지를 1백% 인수했다.

불과 2년전만해도 전무하던 외국기업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올들어 63%(내수판매량 기준)까지 높아졌다.

외국 정유회사들의 국내 진출도 잇따라 국내 시장의 절반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해 아시아 지역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투자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한전선과 합작으로 국내 알루미늄 시장에 진출한 캐나다 알칸은 지난 5월 현대 계열의 대한알루미늄마저 인수했다.

한국 시장을 석권한 후 중국과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하겠다는게 알칸의 투자 전략이다.

멕시코에 본사를 둔 세미나스가 지난 98년 흥농종묘를 인수한 것도 아시아 지역에 생산거점을 확보하기 투자로 볼 수 있다.

외국기업의 자동차 부품시장 진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계열의 부품업체인 델파이는 대우기전과 한국델파이를 합작설립한 후 대우정밀 현가장치 부문과 (주)성우, 한국루카스 디젤 지분(70%)을 인수했다.

이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시장을 공략한 후 아시아 지역 수출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각종 투자관련제도가 개선된 것도 외국기업의 한국 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를 봤다.

정부는 지난 98년 정리해고를 합법화하고 투자업종을 개방했다.

조세감면 및 토지취득지원을 확대하는 지원책도 내놨다.

숙명여대 위경우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우량 기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적극적으로 국내 투자를 검토하는 외국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제품 개발력이나 생산기술 면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업체에 대한 투자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