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2일 한국가스공사 본사 강당.

한달전 농림부장관으로 입각한 한갑수 사장의 후임을 선출하는 임시 주주총회가 열렸다.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는 앞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 자천타천의 사장후보 10명을 대상으로 심사를 벌여 3명을 최종 후보로 선정해 놓은 상태였다.

후보는 14,15대 원내진출했던 민주당의 김명규(현 가스공사 사장) 전 의원과 업계에 계속 몸담아온 P,C씨 등 3인.

주총결과 예상대로(?) 김 사장이 선임됐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전부터 업계 일각에서는 P,C씨를 지칭 ''(공개경쟁 모집이라는 모양새를 위한) 들러리''라며 "(공개경쟁이) 낙하산 인사를 정당화해 주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돌던 터였다.

◆ 정치권과 전직관료가 휩쓴다 =공기업 사장 뿐만이 아니다.

각종 공단과 협회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직급도 사장과 감사에서부터 간부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6일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박태영)이 특1급에 해당하는 광주 지역본부장으로 이 업무와 무관한 대한송유관공사 본부장인 L모씨를 특별 채용했다는 이유로 노조에서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한나라당까지 이를 비난하는 논평을 내는 등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다.

기획예산처가 구조개혁 대상으로 삼은 13개 정부투자기관과 8개 정부출자기관 등 21개 주요 공기업 사장의 이력서를 보면 정치권 출신이 5명, 전직 고위관료 출신이 10명이다.

또 군출신이 2명이어서 내부승진을 포함한 업계전문가는 4명에 그친다.

내부에서 감시 감독해야 하는 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군 감사원 등 소위 힘있는 기관에서 정년을 맞았거나 정년을 앞둔 퇴역인사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연맹은 최근 공개한 분석자료에서 "정부투자기관의 경우 사장은 대부분, 감사는 1백% 낙하산 인사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 낙하산 인사의 부작용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의 실무관계자는 "한국전력을 비롯한 대형 공기업들이 개혁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등 구조조정의 최대 장애요인이 노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원칙없는 낙하산 인사가 노조의 힘을 키워온 측면이 강하다"고 실토했다.

경영진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노조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고 이를 빌미로 회사사정은 고려하지 않은채 노조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98년 이후 공기업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이같은 행태가 계속돼 왔다는 점.

이계철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한국통신 등을 포함, 일부 초대형 공기업 사장에 전직 청와대 수석과 장관을 지낸 K씨가 계속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철의 경우 박태준 전 총리 퇴진이후 민주당이 ''접수''를 시도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아 사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기획예산처는 98년 공기업 구조개혁의 프로그램을 짤 때부터 이 문제의 폐단을 인식, 개선방안의 핵심내용으로 공기업 경영진의 낙하산 인사 근절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실무자들의 이상과 현실은 달라 낙하산 인사는 여전하고 책임경영은 요원해지고 있다.

일부에선 낙하산 인사가 이뤄진 것은 결국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승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폐해도 정권차원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