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원화환율이 천정을 모른 채 치솟았다.

환율 폭등은 주가 및 금리에도 타격을 가해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등 시장에선 위기감이 극도로 고조되는 모습이다.

이같은 불안심리를 반영,원화환율의 하루 변동폭이 17원을 넘는 극심한 등락장이 연출됐다.

<>패닉상태에 빠진 외환시장=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환율은 역외선물환 시장(NDF)에서의 달러 강세 여파로 전날보다 1원10전 오른 달러당 1천1백78원에 개장한 뒤 잠시 당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탐색전을 벌였다.

이 덕택에 원화환율은 1천1백73원대까지 밀리기도 했다.

곧이어 당국의 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경보''가 해제되자 환율은 급등세로 돌변했다.

단숨에 1차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달러당 1천1백80원선을 돌파한데 이어 1천1백90원의 벽마저 깨버렸다.

원화환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달러 매수공세를 벌여온 역외세력들은 쾌재를 불렀다.

반면 정부의 개입에 장단을 맞춰 간간히 달러를 내놓은 국내 은행들은 대부분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장에선 은행들도 달러 사자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달러를 사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것이란 기업들의 가수요가 붙으면서 시장은 이성을 잃은 채 패닉상태에 빠졌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오전중 당국의 개입을 예상하고 달러를 팔 생각을 가졌던 기업들도 환율이 폭등세로 돌변하자 성급히 매물을 거둬들였다"고 전했다.

한동안 천정을 모르고 치솟던 원화환율은 오후 4시 재경부의 외환시장 안정관련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다시 1천1백80원대로 하락하는 극심한 등락장을 연출했다.

<>1천2백원선 돌파도 시간문제=딜러들은 당국의 본격적인 개입이 없는 한 1천2백원선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1차 저지선인 1천1백80원선이 뚫린 이상 다음 2차 저지선은 1천2백20원이 될 것이라는 게 딜러들의 전망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분석가는 "정부 개입으로 시장이 잠시 술렁거릴 수 있으나 경기둔화가 진행되고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한국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탈)을 감안할 때 환율 상승추세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진수 신한은행 과장도 "동남아 통화들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데다 내년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도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원화환율은 1천2백20원까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정부가 전방위 개입에 나설 경우 외환시장이 다소 진정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시장안정 여부는 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강한호 산업은행 자금거래실 과장은 "외환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며 "정부가 강력한 환율의 안정 의지를 보일 경우 시장이 급격히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외환시장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작은 규모의 주문에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연말께는 1천1백50원~1천2백원에서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병연 기자 yooby@ hankyung.com